노동요 - 철도 인생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다양한 동물이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독에 면역력이 있어 말미잘을 은신처로 이용한다. 말미잘은 흰동가리를 이용하여 먹이를 구한다. 코뿔소는 등에 늘 진드기를 달고 지내는데 할미새는 이를 먹으며 산다. 코뿔소는 할미새를 천적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이런 공생 관계는 동물이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업소의 한 차장님께서 점심시간에 자기만의 숨겨진 맛집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나를 구로 공구상가로 데려가셨다. 공구상가는 구로역 바로 앞에 있지만 직접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을 정도로 생경했다. 괜히 쇳내만 가득하고 망치나 톱 같은 공구만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은 아기자기했다. 철물점 외에도 제본 집, 식당, 편의점 등이 곳곳에 있었다. 공구나 기계 쪽으로는 문외한이다 보니 공구를 사면 얼마나 사겠느냐며 상가도 인적이 드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공구상가에서 공구 관련 일을 하면 각종 서류가 필요하고 그 서류를 만들기 위해 제본 집이 필요하다. 공구상가에서 일을 하면 식사 시간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이 필요하다. 각종 생필품을 사기 위해 편의점이 필요하다. 공구상가라고 공구와 직접 관련된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구 상가의 상권이 무너지면 그 안에 자리 잡은 다른 업종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들도 동물의 세계처럼 서로를 돕고 살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그렇다. 어느 직렬 하나 문제가 생기면 다 무너진다. 기차 한 대가 잘 다니려면 기관사가 필요하다. 객실 내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승무원이 필요하다. 기차를 타기 위해 역이 필요하며 역에서 일하는 역무원이 있어야 승객이 편히 열차에 탈 수 있다. 열차가 잘 다니려면 선로에 이상이 없도록 점검하는 직원이 필요하고 전기 공급이 원활하도록 전차선을 점검하는 직원이 필요하다. 각종 건축물에 이상이 없도록 점검하는 건축 직원, 열차를 점검하는 차량 직원, 신호를 정확하게 줘 사고 없이 열차가 다닐 수 있게 하는 관제 관련 직원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다양한 직원이 있어야 열차 운행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어느 직렬은 대접받고 어느 직렬은 푸대접받는다는 말이 돌고 특정 직렬, 업무의 필요에 의문을 제기하며 서로를 헐뜯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입장을 돌아보자며 업무 순환이나 체험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24시간을 교대하며 돌아가는 이 회사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우와 그에 걸맞은 급여 등으로 회사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 자부심을 채워줘야 하는데 갈 길이 참 멀다. 회사의 운영이 누군가가 잘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관성에 의해 돌아가는 느낌이다.
동물이 서로 간의 공생 관계를 이어가듯 우리도 수많은 사람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생 관계를 잇고 있다.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기억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반복에 익숙해져 잊고 사는 때가 더 많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것, 살 수 있는 것이 나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