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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동요

본부에 갔다

노동요 - 철도 인생

by 와칸다 포에버

3월의 쉬는 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영화 보는 데 집중한다고 전화를 받지 않고 상영이 끝난 뒤에 전화를 걸었다. 내게 연락했던 이유는 본부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사이동을 해야 하는데 대체자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다고 지원할 때는 뽑지도 않더니 자신들이 필요해서 나를 구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인생이란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며 이해관계가 맞아야 일이 진행되기 수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제안을 수락했다. 아무리 내가 원해도 안 될 바에 상대가 원할 때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내가 본부라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어떤 이는 교대근무라는 조금은 색다른 근무 형태에 피로를 느껴 통상적인 출퇴근을 하고 싶어 지원한다. 어떤 이는 조금 더 높은 단계의 부서에서 일해 이른 승진 같은 빠른 경력 발전을 위해 지원한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단순하고 순진한 이유다. 지금까지 여러 업무를 맡았는데 다 그러한 이유였다.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지 못하는 것. 어쩌면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일하는 거 여러 가지 경험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크다. 일 하나만 오래 하면 쉽게 질리고 그 일에 익숙해지면 내 머리가 굳는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받았다. 적응이 빠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환경이 순환되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게 나란 사람이다.


익숙해지면 그만큼 편하다. 그래서 내 선택을 의아하게 여기는 이도 많았다. 대부분이 나보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이들이다. “왜 가냐?”, “뭐 하러 가냐?” 그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할 일이 많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서 힘들다. 급여가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다. 이런 이유로 다들 꺼리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물었다. 가치관의 차이인 것인가? 아니면 그들도 패기 넘치는 때가 있었는데 점점 변했다고 생각해야 할 것처럼 세월과 환경의 영향이라고 분석해야 할까? 아니면 애초에 타고난 것일까? 이것은 다름의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본다. 그들도 직급이 낮았다면 나처럼 가려고 했을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직급이 올라갈 만큼 갔다는 이들의 대부분이 내 선택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기에 그렇게 의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이동을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인사이동 공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미정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취소될 수도 있다. 1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경험했다. 그래서 마음 편히 원래 하던 내 일에 집중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괜히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 지내는 환경에 적응했고 친숙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에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적응해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어려운 일이다. 비로소 공문이 나서 발령이 확정되었을 때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크게 교차했다.


일하는 장소와 시간이 바뀌지만 내 일이 아주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전철차장으로서 현장에서 승객의 이동을 실질적으로 도왔다면 내가 본부에서 하는 일은 전철차장이 편히 일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 지급되는 급여 등을 챙겨야 하고 그들이 한 달간 일할 근무표도 만들어야 한다. 내가 근무한 곳이 구로라는 전철차장 사업소의 일부라면 이번에는 안산과 병점에서 근무하는 차장들까지 총괄해 챙겨야 하기에 업무 범위가 넓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출근을 앞두고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하기에 조금 겁이 났다. 실수를 저질러 전체에 피해가 갈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예전의 나라면 해보기도 전에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 실수하면 욕은 먹어도 죽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으로 일단 부딪치기로 했다. 절대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저지른 게 아니기에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당당하게, 조금은 뻔뻔하게 나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출근하기로 했다.


그 말이 무색하게 근무 첫날부터 얼을 탔다.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으니 전원 켜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인계도 제대로 받지 않았기에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내가 일을 온전히 파악하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배우면서 해야 하니 더 어려웠다. 시간은 참 잘 갔다. 한 게 없는데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이 찾아왔다. 앞으로 참 고달플 것 같다. 이겨내려면 공부밖에 더 있겠나. 몸으로라도 버텨서 일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나중에는 웃음 나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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