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 - 철도 인생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일근 형태의 근무 방식에 기대했던 것은 저녁이 있는 삶, 보편적인 직장인의 삶이었다. 그런데 한 달간 일하는 동안 제 근무시간대로 집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점점 나이가 들고 있는데. 고등학교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나의 삶은 고등학생과 비슷하다. 왜 야간 자율 학습하듯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가는가.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집에 갈 수가 없다. 누가 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남아서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해야 하는 상황이 자꾸 일어난다. ‘내가 그렇게 일을 못 하나?’ 의문이 든다. 의문은 나를 공격해 자괴감을 낳고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내 일만 하면 어떻게든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날이 드물다. 회의하고, 통화를 하느라 시간이 흐른다. 누군가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상급 부서에서 일을 떠넘기기에 내 업무를 미루고 그 일을 한다. 그러면 오늘 내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해 야근으로 해치워야 하는 때가 잦아진다. 더 일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누가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기적일 줄 알았던 나라는 사람에 남아 있는 티끌만 한 책임감, 일 하나에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 이렇게 일하면 내일이 편해지고 나도 발전할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 이런 것들이 나를 붙잡는다.
평일에 야근으로도 해내지 못한 일들은 주말 출근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보람이 없다. 보상도 없다. 내 일을 기한 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어떤 이는 내게 말했다. “그렇게 해도 어차피 일은 해결되지 않고 더 쌓일 테니 그냥 마음 편히 가라.”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열심히 잘 해내면 되는 것 아닌지 반문을 마음속으로 했지만, 점점 공감이 간다. 그냥 두면 마음 편하지만, 어릴 적부터 게임과 밀접한 삶을 살았던 나는 하나의 임무를 해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시스템에 세뇌되어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잘 퇴근한다.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잠시 숨을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면 다들 떠나고 없다. 그들은 일을 잘해서 그런가. 일이 없어서 그런가. 업무 시간 중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면 놀라기도 한다. 나는 이야기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출근할 때 봤던 스마트폰을 점심시간에 한 번 보고 퇴근할 때가 되고 나서야 볼 정도다. 기약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런 여유를 누릴 때가 오겠지? 기약 없는 일을 기대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요즘 참 힘들다. 더 힘든 건 내 업무가 싫지는 않다는 것이다.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힘든 마음만 크면 마음 편히 포기할 텐데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분해 이겨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러니까 남아서 일하는 것도 별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착각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긴 일에 관한 흥미가 금방 식지 않는 법을 찾아야 버틸 것 같다. 그래야 업무를 수월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 내공이 쌓였을 때라면 비로소 내가 원하는 정시 퇴근의 꿈을 이루며 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