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좋아하지만 어릴 때 분식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하굣길 집으로 가는 게 즐거웠던 이유는 집에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임시로 세워진 천막, 작은 트럭, 상가 분식집. 이곳저곳에서 파는 분식을 먹을 기대 때문이었다. 떡꼬치는 200원, 종이컵에 담은 떡볶이를 단돈 500원으로 사 먹는 재미는 쏠쏠했다. 적은 돈이지만 행여나 실수로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돼 동전이 든 주머니에 수시로 손을 넣으며 동전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 분식집에 새로운 효자 상품이 등장했으니 바로 피카츄 돈가스였다. 포켓몬스터가 어린이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피카츄 모양을 한 돈가스가 나왔고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원래는 그냥 돈가스를 꼬치에 꽂아 팔았는데 맛은 같지만, 모양만 피카츄인 돈가스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그때 나는 피카츄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한 입 얻어먹었는데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양은 참 귀여웠지만 꿉꿉한 돼지 냄새가 물씬 풍겨 먹기가 힘들었다. 저작권료를 내면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격도 포켓몬스터 프리미엄이 붙었는지 기존 돈가스보다 더 비쌌다. 차라리 다른 걸 더 먹겠다는 생각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산책을 하다 한 초등학교 앞 분식점이 영업하는 것을 봤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이 아니었기에 한동네에 살면서 한 번도 사 먹지 않은 곳이었다. 이후에도 가끔 그 앞은 지나다녔지만, 이용할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수많은 가게가 문을 닫고 새로 열었지만, 이 가게는 그 자리에 있었다. 사장님이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면서 있는 그 모습이 반가웠다.
하교 시간과 겹쳤는지 많은 아이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듯 분식점에서 하나씩 손에 들고 갔다. 어떤 걸 파는지 궁금해 나도 분식점에 갔다. 어떤 아이는 작은 손으로 동전을 세어가며 값을 내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스마트폰으로 계좌 이체를 했다. 메뉴판을 보니 어릴 때보다 훨씬 가격이 오른 분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팔지 않던 것들도 있었다.
그냥 보고 가려는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너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충동적으로 이것저것 사는데, 눈에 들어온 피카츄 돈가스도 하나 주문했다. 마침, 지갑이 없어 나도 계좌 이체를 하려는데 어떤 아이가 친절하게 사장님 계좌 번호를 알려줬다. 수많은 아이 속에서 사 먹는 데 창피한 마음도 들었지만, 손님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으로 꿋꿋하게 버텼다.
한가득 분식을 샀다. 어릴 때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당시 포켓몬스터 빵을 사지 못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재출시한 그 빵을 싹쓸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차마 분식집 앞에서는 먹지 못하고 포장해 집으로 돌아와 먹었다. 비닐봉지를 열어 꺼낸 피카츄는 내 기억 속의 녀석과 조금 달랐다. 뭔가 더 비대해진 느낌이었다. 두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너비가 널어진 것 같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격도, 크기도 거대해진 건가. 낯선 녀석을 한입 베어 물고 나니 나는 1990년대 후반의 초등학생으로 돌아갔다. 크기와 모양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때 느꼈던 그 꿉꿉함은 여전했다.
이제는 더 맛있는 돈가스, 더 고급스럽고 비싼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됐다. 그러니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 있다. 그래도 피카츄 돈가스가 싫지 않았던 이유는 그때 먹지 않았던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즐거웠다. 지금 분식집을 이용하는 아이들도 더 자라면 나 같은 생각을 할까. 입으로 베어 문 것은 돈가스였지만 추억까지 함께 먹으며 포만감은 두 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