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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되어간다

by 와칸다 포에버

여전히 나는 젊다고 생각한다. 가늠해 보자면 사회 초년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가 내 나이대가 아닐까. 하지만 누구의 기준에 따라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다를 것이다. 나보다 연배가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핏덩이 같은 녀석일 수 있지만 어린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화석, 이제 살 만큼 산 사람 취급받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형, 오빠, 동생보다는 아저씨, 삼촌이 익숙한 나이. 인정하기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또 수없이 들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나이. 그 세대가 됐다. 시간은 참 빠르게 간다. 여전히 내 기억에는 운동장을 뛰놀던 학생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우리나라에 대두되는 문제 중 하나가 저출산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없다는 말이 자주 나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상황이 나를 만든 건지 어린아이들이 눈에 띈다.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할 때도 있지만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념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할 때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고성과 쌍욕. 흡연도 자유롭게 하는 걸 보며 내가 저 나이였을 때 어땠을지 돌이켜본다.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슷했을 거다. 그렇게 결론지으니 그 시절 우리를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도가 지나쳐 보일 때는 뭐라고 한 소리하고 싶지만, 되레 해코지당할지 두려워 조용히 내 갈 길을 간다. 머릿속으로만 일갈할 뿐이다. 흰 머리카락만큼이나 겁도 점점 늘어가는 게 내 나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꼰대라고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던 내가 이제 손가락질받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 받아들여야 하는 순리일 수도 있겠다. 옛날부터 세대 차이는 있었던 거니까. 아무리 깬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세대를 완전히 배척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고, 문화나 삶의 방식은 시대에 따른 문화, 교육, 접한 문명과 기술의 차이 등 여러 가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니까. 웬만하면 죽을 때까지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원하는 대로 소비하고 살아보자던 ‘욜로(YOLO)’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라는 말이 나온다. 요즘은 실용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추구하는 때로 바뀌었다. 시대상이 금방 바뀌니 주도하는 사람도 빠르게 바뀐다. 당연히 전 세대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뒤쫓는 것이 힘겹고 피곤한 이들은 전성기를 누리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이러니 세대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만 늘던 때 공중화장실에서 고민을 해결할 만한 길을 조금이나마 찾은 대화를 들었다.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은 노인들의 대화였다. “요즘 새끼들은”으로 시작해 갖은 불만과 불평을 혼잣말로 늘어놓는 한 할아버지에게 다른 할아버지가 일침을 가했다. “누가 일찍 태어나래?” 순간 싸움이 날 것 같아 빨리 자리를 피하려고 했던 그때 들은 답변이 일품이었다. “그럼 할 말 없고.” 어쩌면 싱겁게 느껴질 수 있는 대화였지만 앞으로 내 삶의 지침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태어났으니 그런 거다. 현시대에 잘 맞춰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맞출 수 없다면 그냥 조용히 살다 가면 된다. 지난 세대도 다 그랬을 테니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참을 수 없다면 과거를 떠올리며 반성하거나 추억하면 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계속 변한다.


아무튼 나는 꼰대가 되었고 꼰대로 살게 됐다. 이제 꼰대라는 단어가 젊은 세대를 무시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기성세대를 의미하는 것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어져 그냥 웃어른, 기성세대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면 그래도 괜찮은 꼰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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