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이라는 11월 폭설에 퇴근이 늦어 자정을 넘은 시각,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걸었다. 날씨가 괜찮은 날은 시간이 늦더라도 길에서 운동하거나,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오늘은 길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눈은 내게 부정적인 대상이 됐다. 특히 폭설은 그 이미지가 더 부정적이다. 어린 시절의 나라면 폭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눈이 많이 온다.” 정도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만큼 어린 시절 눈은 싫기보다 반가운 존재였다.
10대였다면, 20대였다면 한밤중 내리는 눈을 보며 마음이 동해 밖으로 나갔을 텐데 지금은 집 안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10대였다면, 20대였다면 눈을 몸소 느껴보겠다고 온몸으로 눈을 받아들였을 텐데 지금은 우산으로 눈이 나를 덮는 것을 막는 일에 집중했다. 눈이 어찌나 내리는지 들고 있는 우산에 눈이 쌓이고 그 무게가 무거워 몸이 휘청거리고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 덮인 길은 걷기는 부담스러웠다. 어둡기까지 했다면 아주 힘들었겠지만, 눈길은 내 시야를 밝혔고 넓혔다. 눈 내리지 않는 날은 칠흑 같은 어둠에 가로등이 아무리 환하게 비춰도 최소한의 시야만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얗게 덮인 눈 덕분에 오히려 낮보다 더 환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곳저곳이 잘 보였다.
밤을 거부하듯 밝은 가로등과 건물의 빛 그리고 이를 반사하는 눈, 여기에 검은 하늘이 대비되어 눈 내리는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데 늘 착잡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걷던 수험생 때, 철야, 새벽예배를 마치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때 본 겨울 하늘이 떠올랐다. 어떤 상황, 감정이었든 간에 여러 빛에 반사되어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눈 내리는 모습은 괜히 벅찬 감동을 주었다.
어릴 때만 느낄 수 있을 순간적인 감정이라 단정 짓고 있었는데 꿈도 목표도 조금은 희미해지고 서서히 놓아버린 지금도 그런 기분을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며 느낀다는 것이 웃기면서도 반가웠다. 내가 여전히 순진하구나, 사람은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구나.
밤 감성, 눈 감성은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창작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 이 두 감성이 합쳐진, 눈 내리는 밤 감성에 취하면 대책이 없다. 어린 시절 나는 눈 내리는 날이면 감성에 취한 떠오른 감상을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해 싸이월드를 들락거렸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글을 휘갈기고 처음에는 뿌듯해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눈 내리는 밤을 보니 감성에 젖어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다. 이미 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지만 누가 보지는 않을까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며 눈 내리는 하늘을 사진 찍는다. 하얗게 모자를 쓴 나무를 사진 찍는다. 누군가 손 시린 것을 참아가며 정성껏 빚어놓은 눈사람을 사진 찍는다. 오랜만에 느낀 가슴 벅참과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더 오래 남기고 싶어서.
눈을 보며 느낀 이 감정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사라져 내일 다시 집을 나설 때는 눈 덮인 길을 보면 한숨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눈이 감기기 전까지 만이라도 오랜만에 느낀 이 신나는 기분을 최대한 오래 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