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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당했다 1

by 와칸다 포에버

이런 일이 더는 없을 줄 알았고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줄 알았다. 사기로 경찰서에 갔다. 이번에도 중고 거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번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구매자로서 당한 사기를 신고하러 갔다는 것이다.


사기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패드’였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공부와 영상 감상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하기 편하다는 말을 듣고 잠깐 찾아봤을 뿐이었다. 찾다 보니 신제품은 조금 비싼 것 같고 차라리 중고 물품을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점점 얼마 쓰지 않고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을 찾게 됐다. 발품을 아무리 팔아도 안 돼서 포기할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애플의 제품을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 사라지지 않는다는 ‘애플 병’에 걸리니 이에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의지의 한국인 기질을 발휘해 조금 더 찾아보니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미개봉 상품을 파는 사람을 찾고야 말았다.


의심 많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싼 가격에 팔아서 당연히 사기일 거로 생각했다. 게다가 판매자와 입금해야 하는 계좌의 계좌 주의 이름이 달라 더욱 의심이 갔다. 하지만 내 안에 이미 애플 병이 심하게 도진 후였다. 애플 병의 치료 방법은 구매 단 하나뿐이었다. 사기인 게 훤히 보임에도 평소와 달리 홀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채팅 후 사기꾼이 알려준 계좌로 물건 가격을 입금했다. 한번 사기꾼을 경찰에 신고하고 돈을 되돌려 받은 기억이 있다 보니 불필요한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진짜 사게 되면 좋고 안 되면 신고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입금 다음 날 사기꾼은 잠적했다.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일까? 당황하지 않고 바로 각종 증거자료를 준비해 경찰서로 향했다. (신분증 사본, 입금확인증, 채팅 내용 캡처 등이 증거자료가 된다) 서류 절차를 밟아 경찰서에 신고하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비슷한 사건들을 찾아봤다. 여러 블로그에서 사기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대부분 신고 후 잊고 지내다 보니 4~5개월 후 사기꾼을 잡아 돈을 받았다, 재판 중이다 등의 결말이었다. 빨리 일을 끝내고 싶지만, 사기꾼을 하루 이틀 안에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고 나도 내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생활에 집중한 지 몇 달 후 문자메시지가 왔다. 반가운 소식일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신고한 구의 경찰서에서 집중 수사를 위해 다른 구 경찰서로 이 문제를 이관한다는 것이었다. 사기꾼의 실제 주소지가 내가 사는 곳과 다른 곳이었나 보다. 곧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지만, 메시지가 온 후 또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다시 몇 달 후 이 일에 대해 잊을 때쯤 경찰에서 수사를 종결하고 검찰로 이관한다는 연락이 왔다. 경찰에서 잡지 못할 문제인 건지, 범죄의 경중 수준이 경찰보다 검찰 수사가 필요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사기 신고 7개월이 조금 지나서 법원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사기꾼의 ‘구공판’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구공판은 검찰에서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법원에 정식재판을 열어달라고 청구했다는 것이다. 내가 입금한 계좌의 주인은 미성년자라 소년보호사건 송치 결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사기꾼 일당의 인연이 무엇인지, 이들이 어떻게 결탁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또 ‘배상명령’ 신청할 수 있다는 안내도 함께 받았는데 배상명령이란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당연히 내가 날린 돈을 되찾기 위해 신청했다. 법원에서 관련 서식을 받아서 직접 법원에 제출하거나 우체국을 통해 법원에 보내면 된다.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문제가 재판까지 간다니. 또 법원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내가 이렇게나마 인연을 맺다니. 재판도 바로 할 줄 알았는데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법원에서 사건 검색으로 경과를 찾아볼 수 있는데 사기꾼이 변호사를 선임한 것을 보며 참 흥미로웠다.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나보다. 재판하게 되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항소 같은 문제로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문제로 이렇게 1년 넘는 시간을 보낼 것 같아 지겨운 마음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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