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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당했다 2

by 와칸다 포에버

재판으로 넘어가니 금방 해결될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잊고 지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결과는 날 테니까. 그래도 틈틈이 사건 진행이 어떻게 갱신되는지는 확인했다. 기다리는 동안 사건 검색을 하니 다른 피해자들도 등장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다. 여러 사건이 합병됐고 피해자들이 배상명령 신청을 하는 수도 조금씩 늘어났다. 기다리는 동안 공판기일이 결정되고 연기되기를 반복했다. 사유가 궁금했지만, 내용이 올라오지 않았다.


일이 진행되는 동안 피곤했던 일은 등기 수령이었다. 법원에서 자주 재판 관련한 내용이 등기 우편으로 왔다.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집에 없는 날 집배원이 오면 늘 반송되었다. 그래서 내용물을 받기 위해 직접 우체국에 찾아가는 일이 잦았다. 시간과 돈을 소비해 가며 우체국을 찾아다니니 재판에 꼭 이기고 피해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우뚝 솟았다.


사건을 잊고 지낼 때쯤 선고기일이 정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 사건이 분리·병합 결정되었다면서 다시 변론 재개 결정으로 변경되어 공판기일이 밀렸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이제 끝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법원에서 연락이 와 사기꾼이 합의를 원한다며 내 전화번호를 건네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사기꾼과 직접 연락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국선변호인에게 전화번호를 넘길 거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지만, 합의를 해본 적이 없으니, 절차와 방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긴장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런저런 피해를 호소하며 원금뿐만 아닌 돈을 더 얹어 많이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기꾼이 합의를 포기하고 그냥 형 받겠다고 하면 원금도 못 받는다는 말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 국선변호인에게 연락이 왔다. 피해 금액과 합의금으로 원하는 금액을 알려달란다. 사기당한 금액에 재판 때문에 나간 돈 포함한 돈을 요구하기로 했다.


구공판이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피의자가 계속 불출석하면서 재판이 한 해를 넘어갔다. 피의자는 불출석과 기일 변경 신청을 반복하며 재판 진행도 점점 늦어졌다.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답답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내 삶에 집중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 이렇게 길어지다니. 재판이라는 것은 누가 피해자고 피의자인지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확실한 상황에서도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다리는 동안 피고인은 자취를 감췄는지 피고인 소재 탐지촉탁서라는 것도 발부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또 지나 피고인이 잡혔는지 소재지를 확보한 건지 구속영장이 반환 제출되는 일도 일어났다. 사건이 1년이 지나서 2년이 될 때쯤 오랜만에 등기 우편을 받았다. 공판기일이 결정되었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은 서울 구치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지나 선고기일이 결정됐고 선고도 났다. 1년의 징역형이었다. 피고인은 반성문과 지인들의 탄원서까지 제출하며 감형을 노렸던 것 같다. 여기에 나를 포함한 피해자들의 배상명령 신청은 각하됐다.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건지도 알 길이 없었다. 피고인은 죗값을 치르는 것도 억울했는지 항소까지 신청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사기 피해에 대한 보상은커녕 2년 가까운 시간까지 허비했다. 이럴 때는 그냥 이대로 결과를 받아들이든지 민사소송을 진행하든지 크게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는데 나는 소송 없이 잊고 살기로 했다. 민사소송이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오랜 시간을 기다릴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이렇게 내 사기 피해 소송은 끝이 났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허탈한 마음만 가득했다.


이번 일로 깨닫고 마음먹은 것이 있다면 거래를 포함해서 어떤 일을 하든지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눈 감는 새에 코 베이는 일은 허다하고 눈 뜨고 코 베이는 일도 의외로 많다.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면 안 된다. 또 웬만하면 물건은 중고보다는 돈이 들더라도 새 물건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다 보니 물욕이 더욱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아닌 이상 뭔가를 사는 일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내 인생에 새로운 교훈을 주었지만 그 교육비는 참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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