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만해도 전화라고 하면 집에 있는 전화기를 떠올리지 스마트폰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존재가 없었으니까. 요즘은 스마트폰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력서 같은 자기 정보 관련 서류를 작성할 때도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하면 집 전화가 없어 자기 스마트폰 번호를 적는 게 다반사다.
예전에 전화기는 공용의 것이었다. 전화라고 하면 집에 놓인 전화기를 떠올렸다. 모두의 용무를 하나의 전화로 처리했다. 이제는 사적인 것이 되었다. 누가 내 전화를 빌려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남의 전화를 보거나 사용하려는 것이 무례하게 여겨질 정도로 사생활 침범의 최전선에 있는 물건이 되었다. 개인 소유 전화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용도를 나눠 여러 대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전화는 소통에 혁신을 준 발명품이다. 편지 같은 수단이 생기면서 원거리 소통이 가능해졌지만, 전화는 편지가 오가는 데 필요한 시간을 눈에 띄게 줄였다. 번호만 누르면 대면하지 않아도 상대와 소통하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었을까. 보급이 활성화되었을 때는 그 신기함에 여러 번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 고종이 명성황후 능에 전화했다는 설이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혜자가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전화하는 에피소드는 전화의 특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나도 어렸을 때 거는 재미로 통화를 여기저기 시도했던 일이 있었다. 한번은 누나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집 전화로 누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누나 뭐해?” “학교지.” 대답을 들었을 때 왠지 누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누나가 집에 돌아왔을 때 물어보니 통화한 적이 없었다고 하니 전화번호 앞자리를 틀리게 눌러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통화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와 통화했던 그 ‘누나’도 동생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통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보급이 활성화되며 전화는 모양과 기술도 발전했다. 처음 나왔을 때는 교환에게 통화를 부탁했다고 하고 다이얼을 돌리는 것, 번호를 누르는 것 등 직접 유선으로 전화를 거는 것부터 무선 전화기 등 휴대성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공중전화 부스가 곳곳에 설치되며 집이 아닌 곳에서도 전화할 수 있게 됐다. 이후에는 시티폰이 등장하고 벽돌 크기의 휴대전화, 폴더폰, 슬라이드폰, 터치폰 등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을 가진 핸드폰이 등장했다. 이제는 대중화되었지만, 혁신적이었던 스마트폰까지. 나는 스마트폰이 나온다는 것을 군대에서 점호 시간에 9시 뉴스로 접했던 기억이 있다.
다양한 모양의 핸드폰이 등장하며 지금은 통화의 용도뿐만이 아니라 핸드폰 자체가 자신을 꾸미고 뽐내는 액세서리가 되었다. 핸드폰을 꾸미는 방법도 케이스뿐만 아니라 스티커 등 여러 가지로 다양화됐다.
누군가에게는 전화기가 통화의 용도가 아닌 게임기, 사진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제 전화는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 너무 다양해 작은 컴퓨터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내게 전화는 무슨 용도일까. 그냥 몸에 붙어 있는 장기에 가깝다. 달고는 있지만 솔직히 기능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무겁게 왜 들고 다니느냐고 물어봐도 할 말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필요 없다고 하기는 힘든 그런 물건이다. 전화가 울릴 일은 별로 없으나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직접 대면을 제외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갑자기 드는 궁금증이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소통하는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연락을 무시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일까) 그런 면에서 내게 전화기는 기다림의 수단이 된 것 같다.
전화기는 어떤 모양으로, 어떤 기능을 더하며 발전할까? 옛날에 전화는 전화 수화기 모양에 따라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 펴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요즘은 그냥 손바닥으로 표현한다고 하니 나중에 전화기가 더 발전하면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