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사보기자

노동요 - 철도 인생

by 와칸다 포에버

사보기자 위촉식이라면서 임명장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홍보실장인가 높은 직급의 한 분이 했던 말이 있다. (이 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윗선의 인사이동은 잦은 편이기 때문이다) “좋은 말만 써주시지 말고요. 회사 까는 글 좀 써주세요.” 그래야 회사의 발전이 있다면서 말이다. 나는 말 잘 듣는 사람이라 이를 수행하려고 했다. 매번 비판의 글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회사가 잘한 일은 칭찬하고 별거 아닌 것은 포장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언론의 자유로 다양한 것을 취재하기는 제약이 많은 곳이다. 읽는 이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홍보다. 오로지 홍보하기를 바란다. 초기에 그러니까 열정이 있었을 때는 기획을 낼 때마다 까였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상부에서 하지 말라는 이유가 그나마 구체적인 답변이다. 대부분은 그것은 안 될 것 같다는 답변이다. 뭘 쓰라는 건지. 개인 일상에 관한 글을 쓰라는데 어떤 사우가 사보에서 내 일상에 관한 글을 읽고 싶을까. 사보가 일기야? 결코 우리 회사 사보는 참신해질 수 없다. 용비어천가 같은 회사 찬양 글만 쓰기를 바라는 것인가.


사보를 기획하는 이들은 준비성이 없다. 사보는 격월로 나오는데 최신 호를 만들기 3주 정도 전에 단체 문자를 돌린다. 기획을 내라고 한다. 내 것이 뽑힐지는 모르지만 준비해서 낸다. 인터뷰 기사를 구상해 제안하면 3, 4일 안에 당사자 섭외해서 인터뷰하고 사진도 좀 찍어 내라고 한다. 고화질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급한 일정 통보에 화가 났다. 우리는 기자를 겸업하는 것이지 기자가 아니다. ‘현재 맡은 업무가 있는 사람들인데 시간을 넉넉하게 주거나 장소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이후로 나를 제외하고 일을 시킨다. 사보를 만들기 직전에 기획을 내는 게 아니라 꾸준히 제안하게 하고 검토해 섭외 등을 지원해 주면서 탄탄하게 만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


사내 방송 아나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 회사 사내 방송 아나운서 계약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바뀐 김에 이들을 회사에 알릴 겸 인터뷰하고 사내 방송 연혁 같은 걸 정보로 전달하는 등의 구성으로 글을 써보려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못하게 했음에도 남자 아나운서와 연락이 닿아 강행했고 이 브런치에 게시했다. 내 기자 활동은 공식도 아닌 비공식으로 마무리됐다.


이밖에 우리 회사 경영평가에 대한 반성 등에 관한 기사를 써보려 했지만 전부 무산됐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인지 돌아보자는 것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과거 기사들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들이 도돌이표처럼 다시 나오는 기사가 우리 사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에 게임 방송을 보는데 출연자가 했던 말이 있다. “게임이 좋아서 게임 개발자가 되었는데, 되고 나니 너무 힘들다. 좋다고 업으로 삼기보다 취미로 남기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라고. 독자로 있을 때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었는데 막상 참여하고 나니 제약이 많아 점점 싫증이 나는 것이 사보였다. 재미난 정보를 발견하지 않는 한 내가 사보를 다시 읽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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