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계간 익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Jan 09. 2021

익숙한 불평등

디지털 경제에서 나타나는 계층 간 불균형을 말하는 ‘디지털 디바이드’는 정보와 지식을 얻는 일에도 불평등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 불평등함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격차와 대물림을 만드는 요인 중 하나에는 가족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있다. 소위 잘 사는 ‘상층’에 자리 잡은 집안의 자녀는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많은 것을 누린다. ‘스펙’을 쌓는 일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직업, 경제력 등의 문제는 다시 순환되어 후세에게 영향을 준다. ‘금수저’, ‘흙수저’처럼 손에 쥔 수저도 재료를 바꾸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는 평등보다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져 버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까맣게 잊고 있을 때마다 상기시켜주는 일들이 일어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 이후 상황이 그러했다. 국민의 불편함을 자극하는 일들로 가득했다. 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일방적이었던 검찰 수사도 불편했지만, 이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모두에게 기회는 똑같이 주어지는지,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입시, 취업 등 지금 우리나라는 황당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상황이다.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누군가는 앞에서, 누군가는 뒤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길도 다르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트랙 위를 달리지만, 누군가는 포장도 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돌길에서 달린다. 당연히 앞에서 출발해 안정적인 길을 달린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큰 구조다.


누군가는 말한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해서 결과가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평등한 결과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공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 분노하는 청년들과 학부모들의 입장은 마치 사회가 이 대물림되는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왔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룰 수 있는 이상을 꿈꾸는 것이 이룰 수조차 없는 허상을 바라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평등과 공정이라는 원초적인 것을 사회에 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평등에 너무나 익숙해 타고난 운명, 자연의 흐름처럼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이와 자기를 비교하거나 불평등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보다 나보다 조금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을 비교해 그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거나 나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내가 가진 운이 최악은 아니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것이 편한 거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두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 하는 일은 쓸모없는 질투라며 남 부러워할 시간에 다른 것을 돌아보거나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더 시간을 보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생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더 어려워진 세상에서 결핍을 채우고 엄청난 격차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런 움직임 없이 사회가 평등과 공정을 요구하는 모습을 부러움의 감정으로만 여기거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 너무나 익숙해진 불평등한 삶을 계속 살아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내가 가진 스펙은 결과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놓인 갈림길에서 어느 곳으로 갈지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스펙에 따라 백 가지 선택지가 있는 사람도 있고 다 걸러내고 하나의 선택지만 택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가능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길을 폐쇄하는 일이 발생한다. 선택의 기로를 늘릴 수 있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교육의 변화. 정보 습득 기회의 평등 등 지금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문제 중 어느 하나만 고친다고 해서 불평등이 평등으로 급변하는 천지개벽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변화시켜야 한다. 권리는 안주할 때가 아닌 추구할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작의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