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떠오른 의문. 잠을 자며 꾼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하면 개꿈이라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조상님이 꿈에 나와 숫자를 찍어줘 로또를 샀더니 1등의 영광을 누렸다는 설, 돼지 꿈을 꿨더니 그날 운수가 좋았다는 설 등을 들어보면 꼭 꿈이 허상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꾸고 싶어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꿈이지만 말이다) 심지어 엄마가 아이를 품을 때쯤이면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태몽을 꾸지 않는가.
내가 살면서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꿈에 관한 것이다. 도대체 꿈이란 무엇일까? 어떤 공간인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가상인가? 아니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현실인가?
가끔 언제 현실로 일어날지 모르는 꿈을 꾼다. 내일 일어날지 십 년이 지난 뒤 일어날지 모르지만, 과거에 꾼 꿈의 상황이 현실에서 똑같이 나타났을 때 소름을 느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지몽’이라는데 이게 우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예지몽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꿨던 꿈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뒷자리에 앉은 친구와 쉬는 시간에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얼굴을 보니 초면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너는 누구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나 몰라?”였다. 시간이 지나고 6학년이 돼서 4학년 때 꿈에서 겪은 일을 똑같이 겪었다. 뒷자리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친구도 꿈속 그 친구였고 이야기도 꿈속에서 나눴던 이야기였다. 6학년이 된 현실에서는 그 친구를 이미 알고 있기에 4학년 때 꾼 꿈처럼 그에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지만, 2년 전 꿈속 상황이 갑자기 떠올라 혼자 놀란 적이 있다. 이런 꿈을 꾸다 보니 어떤 때는 꿈에 집착하기도 했다. 기약 없이 꾸는 꿈이지만 종종 꿈을 통해 내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두렵고 걱정될 때가 있다.
이제는 과거를 회고할 만큼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예전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10여 년 전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많은 친구를 만났다. 당시에는 매일 봤을 사람들이지만 ‘오랜만이야’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간만의 만남이었다. 지금 만난다면 내가 그들을 기억하며 알아볼 수 있을까? 이름조차 가물가물한데 말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절친이라고 할 수 없는 급우들도 있었다. 그들이 내 꿈에 등장했을 때, 그 성격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들을 완전히 잊고 지낸 게 아니었다는 걸. 내 기억을 모아 놓는 책장이 있다면 잘 꺼내지 않는 깊숙한 부분에 넣어두었을 뿐 소각하거나 파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 기록이 잘 보존되고 있지만 내가 단지 찾아보지 않았을 뿐이란 걸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인연들을 꿈에서 만나는 날이면 잠시나마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고 과거를 제대로 반영하는 꿈을 항상 꾸는 것은 아니다.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배경이나 공간은 내가 가 본 곳이 아니거나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판타지의 장소가 나오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겪은 상황임은 틀림없는데 장소가 바뀐 곳에서 일어날 때도 있다. 여기에 타인의 인생을 경험하거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나 스친 적만 있을 뿐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사람들과 사건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데 존재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가 마음대로 그들의 형상과 설정을 만든 건가. 내 경험과 지식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면 내게 익숙한 단어와 표현이 나와야 할 텐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내가 평소 쓰지 않는 어휘를 사용한다. 어쩌면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람들이 지금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진 않을지. 내가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지만 꿈이라는 공간을 통해 실존하는 그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정말 현실 속에 그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꿈에서 만난대로 정말 그들이 그런 성격과 그런 말버릇을 갖고 산다면 신기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 꿈에도 내가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더라도 말이다.
별의별 꿈을 다 꾸다 보니 꿈을 내 마음대로 바꾸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꿈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꿈만 꾸겠지.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도 있다. 한 번은 그런 달고 단 ‘허니잼’ 꿈에 젖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영화 <인셉션>처럼 꿈속을 드나들며 생각을 조작하거나 훔치는 일이 단지 흥미로운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 속 영원히 멈추지 않고 도는 팽이가 가리키듯 꿈은 꿈일 뿐 현실은 아니겠지만. 생생한 꿈 때문에 뇌가 확장하는 느낌이다. 정말 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