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Jul 02. 2020

산소를 오르는 길

아버지 산소를 오르는 길. 언제나 수많은 상수리나무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길가에 뒹굴고 있는 작은 상수리. 이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상수리를 보자면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애처롭다. 나무는 벌린 팔에 매달려 있는 자식들을 자연의 흐름에 따라 내려놓는다. 품 안에서 벗어난 녀석들의 삶의 방향과 모습은 다양하다. 누군가의 식량이 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는 안전히 땅속에 몸을 맡겨 서서히 자라날 것이다. 물, 흙, 그리고 햇빛. 온갖 풍부한 영양을 맛보는 동안 상수리는 꿈을 꾼다. 언젠가 커서 자기도 아버지가 되기를.


그렇게 나도 아버지로부터 시작했다. 아버지 몸에 붙어 그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의 행동을 따라 하고, 그에게서 가진 영양분을 흡수하며 조금 더 모양은 동그라지고 크기도 통통해졌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당신은 나를 더 붙들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당신에게 더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나무는 힘없이 열매를 내려놓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 흐름에 나는 가지를 일찍 벗어났다.


땅에 떨어졌을 때는 몰랐다. 내가 아직 가지를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든 것이 단계가 있듯 나는 싹을 트일 생각을 해야 했다. 그저 하루빨리 나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없는 어린아이의 호기일 뿐이었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내가 놓인 땅은 양분 가득한 흙이 아닌 아스팔트 발린 길바닥이었다. 영양을 얻고 자라나는 법을 몰랐던 나는 점점 기운을 잃고 있었다. 흙을 향해 굴러가려고 나만의 방법으로 애를 쓴다. ‘아비 없는 놈’, ‘부족한 놈’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바라보는 것 같아 두려웠고 가슴이 아렸다.


길 건너 나무에는 다른 상수리들이 매달려 있다. 나는 지금 땅 위에 있고 그들은 내 머리 위에 있다. 그토록 자립하고 싶어 땅을 사모했지만 부러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먼저 땅에 놓인 나였다. 점점 자라날 때마다 나는 조언이라는 물 한 모금이 갈급했다. 면도하는 법부터 결정적 선택의 순간까지.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며 움직인다. 하지만 서투르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쉬움이 만든 원망과 그리움이었다.


다시 비바람이 몰아친다. 땅 위에 나도, 나무에 달린 아이들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낀다. “귀하는 제한된 기회로 인해….” “오르는 전세에 머무를 곳이 없어.” “연애도 결혼도 포기할까.” 그래도 바라본다. 이들도 양분 삼아 튼튼한 나무로 자라나기를. 그래서 당신처럼 아버지라는 시작점에 설 수 있기를.


하지만 나는 다른 끝맺음을 꿈꾼다. 당신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다면, 나는 당신의 아쉬움마저 달래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튼튼한 나무로 뿌리를 내리고, 고이 상수리를 품어 내가 만난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고운 흙에 살포시 내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당신을 만난다면 철없는 투정을 부릴 것이다. 외롭지만 견뎌냈다고. 그래서 당신처럼 나무가 되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꿈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