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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Jul 02. 2020

노동요의 시작

실직

(이 글은 2011년 군 전역을 앞두고 적은 글입니다.)


이제 4일 후면 나는 실직자다. 실직이라고 하면 조금 섭섭하니. 전직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가 학업에 몰두해야 하는 나는 전역이 4일 남은 군인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아꼈다. 입이 심심해도 PX에 가지 않고 입이 간지러워도 전화를 붙잡지 않았으며 노래방, 오락실 등등 놀이 문화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아꼈다.


휴가를 오래 미뤘다가 한 번에 쓰니 돈을 펑펑 쓰게 되었다. 이렇게 살기 위해 돈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니었는데 뭔가 개같이 벌어서 개처럼 쓰는 기분. 안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밖에 나오니 갖고 싶은 것도 흥미 있는 것도 많아서 그랬던가. 지름신이 들려서 질렀는데 지르고 나니 뭔가 허전한 이 마음. 돈이 아깝기도 하고. 슬펐다.


학생이란 직업으로만 살다가 군인으로 산지 660여 일 정도 되려나. 마냥 싫기보다는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참 묘하게 즐거웠는데. 이제 이 시간도 끝이라니 아쉽기도 시원하기도 하다. 참 신기하다. 무슨 일을 조금 오래 하고 끝을 볼 때가 되면 시원한데 한편으로는 아쉽다.


학생으로 살기 전까지는 실직자가 된다는 생각에 살짝 겁이 났다. 이제 어머니께 손 내밀기도 창피하다. 어머니의 흰머리, 주름, 뭔가 예전보다 더 작아진 것 같은 기분 등등이 떠올라서. 내 머릿속에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이제 혼자서 살고 어머니한테 얻는 것이 아니라 드려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4일 남아도 군인은 군인이다. 군인은 투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알바하러 다녔다. 물론 재정싸움을 하는데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군 생활 동안 모은 월급을 쓰는 것.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 노력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알바 구하기 참 힘들었다. 어차피 다시 부대 복귀해야 하기에 하루 단기 알바를 구했는데 참 안 구해졌다.


하루는 참 운 좋게 했다. 농구장 경기진행요원. 온종일 서 있다가 받은 일당 3만 원. 뭔가 적어 보이지만 내가 알바를 해서 벌었다는 것에 참 신기하고 기뻤다. 피곤했다. ‘돈 벌기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일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다들 힘없어 보이고 그냥 닥치는 대로 돈을 버는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다음날, 그다음 날 알바를 잔뜩 지원했지만, 연락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알바 한 번 했을 뿐인데 나는 실직자의 기분을 느꼈다. 일하고 싶은데 일이 구해지지 않는 사람. 전화만 봐도 초조해지고. 오지도 않는 전화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무기력하게 기다리다가 하루를 보내는 그런 일상을 시트콤, 드라마, 뉴스 등을 통해 보기만 했는데 내가 이런 모습을 하기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청년 실업자니까.


휴가 복귀 전날에 일이 하나 구해져서 일한다마는 전역하고 나서 해도 되는 일을 지금부터 이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단순히 돈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고 계속 나를 진정시켰다.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물론 어머니의 눈에는 그냥 아기다. 걱정만 한다. 참 미안하게.


"아들아 오늘도 실직자야?"

"응"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나중에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네.


군인이라는 직업에서 해방되는 것이 기쁘지만 실직자가 된다는 것은 참 안타깝다.  알바지만, 나 역시 알바 취업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 것 같다. 알바 기간은 나에게 재정에 대해서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조금 더 성숙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실직자 생활은 거름이 된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일해야 즐거운가 보다.


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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