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단조의 사랑
착각 속에 살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착각이 착각인지 알면서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엔 우연이 운명이길 빕니다. 정말 맑고 좋은 날씨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꽃과 고양이들을 발견하는 날. 꽃은 이파리 하나하나조차 저를 위해 피어있는 것 같고, 고양이는 모든 애교를 동원해 저를 마중 나온 것만 같을 때. 밥을 먹겠다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제 스타일이고, 후식으로 먹은 커피조차 완벽해 그날의 기분을 고조시켜줬던 날.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이 제 생일과 같음을 깨닫고 그 가수의 노래를 연거푸 듣다가, 곧이어 나온 낯선 노래조차 심지어 제 취향이라 즐거웠던 날. 그런 날엔 마침 기대하던 연락이 제게 닿아 조금 더 행복해집니다. 어떤 하루는 너무나도 제 취향이라, 그날의 우연이 우연이 아니면 좋겠다고 착각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날. 신이 저를 위해 필사적으로 계획해놓은 운명적 선물 같은 시간이길 비는 겁니다.
저는 그런 착각을 친애합니다. 친애라는 단어를 오래 만지작거렸습니다. 親愛. '친할 친'에 '사랑할 애'로 이뤄진 이 단어는 그 구성이 참 웃기다 생각합니다. 친함과 사랑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수많은 자리에서 나타난 대화 주제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참 많은 고민을 낳게 했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생각을 '친애'라는 두 글자로 함부로 압축해 놓다니! 우리는 이 단어를 너무 남용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친애하는 누구에게, 로 편지를 시작했다가 지운 날이 많았습니다. 어째서 Dear는 친애로 번역이 되는 것일까요.
각설, 다시 적습니다. 저는 그런 착각을 친애합니다. 그런 착각 속에 평생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종종 믿습니다. 그런 행복한 착각이 내 친구이자 동시에 연인 같은 사이처럼 돈독하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착각이 착각임을 깨닫지 않고, 영원히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사는 삶.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행복인 것처럼 매사를 흡수하여 나아가는 삶. 그리하여 착각과 만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살고 싶었습니다. 일정 거리를 두고 계속 착각 속을 허우적대며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착각은 착각입니다. 언젠간 깨닫습니다. 아 이게 착각이구나. 현실은 다르구나.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구나. 반대로 적으면 더 마음에 듭니다. 나쁜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구나. 매일매일이 좋은 날일 수는 없지만, 나쁜 일은 몰아서 오는 법이라고, 나쁜 날들만 계속되는 때가 있습니다. 현실로부터 사라지고 싶어집니다. 착각의 세계로 떠나고 싶어집니다. 일상으로부터 소멸되고 싶어집니다.
부정적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 평범한 날도 나쁜 날처럼 여겨집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애용하는 해결책을 꺼냅니다. 요즘은 세 가지 해결책을 돌아가며 사용 중입니다. 대화할 사람을 찾거나, 글을 쓰며 스스로와 대화를 하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듣습니다. 이 세 가지 해결책을 모두 섞어 쓰던 어느 날을 떠올렸습니다. 사람과의 대화는 종종 음악 같았습니다. 누구는 헤비메탈처럼 말했고, 누구는 재즈처럼 말했습니다. 저와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보조선이 있다면 그 형태가 오선지와 유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화 속 말들의 음형이 오선지에 걸립니다. 어느 말은 음계에 온전히 부합돼 편안하지만, 어느 말은 불협화음 같아 귀가 아팠습니다. 그러면 저는 당신에게 쉼표가 되었습니다.
쉼표가 되던 순간이 잦으면 비틀대며 걸었습니다. 큰 소리로 노래를 틀고 산책을 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떠올립니다. 저는 다 단조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도-레-미b-파-솔-라b-시b-도와 같은 규칙적인 스케일로 횡단보도의 흰색, 검은색을 밟으면 좋을 텐데, 비틀대는 사람들은 규칙 없이 아무 색이나 밟으며 걷습니다. 그들의 발자국은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피아노 건반처럼 마구잡이입니다. 마침 이런 우연이. 그날의 제 대화도 우연히 불협화음 같았습니다. 조금 더 긴 쉼표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건넵니다. 하지만 결심은 언제나 어려워 저는 제 자신의 다짐을 회피합니다. 이것은 우연입니까, 운명입니까. 아니면 착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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