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잔재주모음집 01.
내 눈. 솔직히 혹사 좀 당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책 읽지 말랬는데, 어두운 곳을 좋아했던 나는 그렇게 구석진 곳에서 책을 읽어댔다.
어릴 땐 안경이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눈 나빠지게 만들 심산으로
일부러 브라운관 TV에 바짝 다가가서는 화면 속 깜빡이는 네모 모양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하느라 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집중을 위해서는 불 꺼진 방에서 스탠드 하나 켜 두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고,
그렇게 한 6년, 재수까지 7년을 스탠드 하나에 의지해 공부하니 눈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그만큼 안경알 속 내 눈도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내 눈은 작아지고 나빠져, 대학교 입학 직전 시력을 측정했을 때 마이너스 12를 찍었다.
이 마이너스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안경집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었다.
"아니 눈이 이렇게 안 좋으면서 여분 안경도 하나 없어요?"
대학교 1학년 때에는 렌즈를 꼈다.
보이기에 좋아 보이려고 눈을 더욱 혹사시킨 셈이다.
눈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에 병원을 찾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잃었던 시력을 되찾기 위해 라섹 수술을 했다.
군대 가기 직전이었다.
안경을 벗은 당장엔 편했다.
워낙 시력이 좋지 않았어서 수술을 하고도 1.0이 채 되지 않았지만
안경을 쓰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일단 군대에서 안경 때문에 불편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내가 영상의 길로 빠질 줄 누가 알았겠나.
전역한 후 PD가 되겠답시고 편집 프로그램을 만지기 시작해
밤늦게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고,
영상에 대한 감을 기르겠다고 유튜브를 끼고 살았다.
수술로 겨우 복구한 0.9 정도의 시력은 사정없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다시 오른쪽 0.3, 왼쪽 0,7까지 망가졌다.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맞추러 안경집을 찾은 김에 시력 검사를 했는데
그 안경집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 시력인데 왜 안경을 안 맞추세요?"
이왕 맞추는 안경 좋은 것으로 맞추고 싶었다.
안 그래도 고생한 내 눈을 위해
명품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안경을 맞추고 싶었고,
'딱 취직할 때까지만 참자'라고 생각했었다.
취직만 하면 좋은 안경을 맞춰 주겠다고 생각했다.
점점 좁아지는 세상을 무시하며 PD가 되었고
'이제는 안경을 맞춰야겠다'라고 생각할 때쯤
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닌 느낌이었달까,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 결과였다.
무작정 퇴사를 지르고 나니 난 다시 백수였고,
내 눈에게 좋은 안경을 사줄 만한 여력도 사라졌다.
그렇게 내 눈은 계속해서 나빠졌고,
지금은 사실 당장 30cm만 떨어져도 글자가 두 개로 보인다.
글자가 나뉘니 한쪽 눈으로만 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일부러 오른쪽 시각을 날리고 잘 보이는 왼쪽 눈으로만 보게 된 것이다.
옛날에 안과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눈은 성장하는 동안은 계속 나빠져요."
그래, 나는 어디까지 성장하려고 이렇게까지 눈이 나빠질까?
얼마나 잘 되려고 라섹수술을 하고도 다시, 이렇게까지 시력이 떨어지는 걸까?
계속 계속 좁아져 간다.
내 시야도 내 시각도.
세상을 보는 마음도 좁아져 감을 느낀다.
나이가 차며 여유가 사라짐을 느낀다.
이젠 시력도 시야도 회복해야겠다.
욕심이 많아서 돌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볼 필요도 있겠다.
이번 인턴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안경을 살 것이다.
다시 좀 넓게, 멀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