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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프 Sep 16. 2021

1분 단편소설 '웃음 할당제'

[번외]잔재주모음집03.

“오늘 할당된 웃음을 다 채우지 못하셨습니다.”


2050년, 온갖 기계와 AI가 사람이 하던 모든 일을 대체하며, 로봇이 세상을 일구게 되었다. 딥러닝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한 AI가 인간의 두뇌 능력을 뛰어넘은 지는 이미 오래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특성을 수십 년간 학습한 AI는 자신들이 일군 세상의 규칙을 인간의 특성에 맞게, 나름 합리적으로 정해 두었고, 인간은 AI가 합리적으로 정한 규칙과 규율 속에 맞게 살아가게 되었다.


“강제 웃음 자극이 20초 간 이뤄지겠습니다.”


문제는 웃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인간의 ‘안정성 추구’를 학습한 AI는 ‘모험 추구’ 가치를 위험성, 불안정성과 동일한 가치로 판단, 세상 속에서 철저히 배제하였다. 세상 속에서 새로움이나 낯선 경험을 맛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웃음이 사라졌다. 정부는 TV 프로그램 편성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비중을 90퍼센트까지 올렸고 매달 자기 개발 비용을 1천만 원씩 지급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으하하하하하하학!”


‘강제 웃음 할당제.’ 하루에 일정 수준 이상을 웃어내야만 한다. 하루 웃음량을 충족하지 못하면 온몸에 부착된 웃음 센서에 전기 자극이 들어온다. 웃음 센서는 예민하게 느껴지는 몸의 부분에 부착되어 있다. 겨드랑이, 팔 안쪽, 갈비뼈, 발바닥, 심지어 사타구니까지.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자극으로 시작했었다. 작은 자극에도 충분히 웃음이 났으니까. 그러나 자극에 무뎌진 지금은, 이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한 자극을 받아야 겨우겨우 웃어낼 수 있다. 강제 웃음에 눈물은 덤이다. 센서가 부착된 부위는 이미 까맣게 지져졌다.


“으하하하학- 으악- 으하하학!”


손가락으로 갈비뼈를 후벼 파는 듯한 고통에 몸이 뒤틀린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 센서를 떼낼 수는 없다. 센서를 하나라도 떼어내는 순간, 바로 집안에 경찰이 들이닥칠 걸. 들리는 소문으로는, 웃음 센서를 떼어내 잡혀간 사람들은 하나 같이 미쳐서 돌아온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매일 이런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미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루의 끝을 이 고통 속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있던 웃음도 사라진다.


“할당된 웃음을 다 채우셨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웃는 하루!”


강제 웃음 자극이 멈췄다. 자극을 버텨내느라 지친 몸에 힘이 빠져, 침대로 픽 쓰러진다. 웃음은 자극이 멈추며 같이 사라져 버렸고, 눈물만 남아 흐른다. 늘어진 몸을 굽어보니 좀비가 따로 없다. 웃으면 건강해진다 하던데, 도대체 어디가? 자극이 가장 센 갈비뼈 자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훑는다. 짓이겨진 살가죽이 축축하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 늘어진 몸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라리 미치는 게 낫겠다. 더 이상 이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버틸 이유가 없다. 웃음 뒤에 남는 고통이 더 큰데, 도대체가 강제로 웃기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발바닥에 붙은 센서를, 아주 천천히 떼기 시작한다.


“경고. 경고. 센서 제거. 센서 제거.”


센서가 붙어 있던 자리에 가벼운 바람이 든다. 두 번째로 겨드랑이에 있던 센서를 제거했다.


“흐흡.. 큽…”


너무 간지러워서 웃음이 난다. 강제 웃음 자극으로 모든 감각이 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센서를 하나씩 제거할 때마다 무뎌졌던 감각에 간지러운 바람이 불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갈비뼈에 있던 센서를 떼어내자 참았던 웃음이 신음처럼 터져 나왔다. 아무리 입을 틀어막아도 묵혔던 웃음들이 끊임없이 삐져나온다. 들썩이는 어깨까지, 어쩔 도리가 없다. 경찰이 문을 부수고 집에 들어올 때쯤에 나는 웃음으로 실신하여 경찰들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이거 봐, 또 미쳤다니까. 센서 떼는 놈들은 다 미친놈들이야.”


경찰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느라 진이 빠져버린 나를 양쪽에서 붙들고는 집 밖으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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