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꼬꼬닭

우리 가족이 아프거나 힘이 없을 때 먹는 일품요리

by 띵맘


“수족구입니다. 입 안에 보이시죠? 다 헐었네요. 아마 오늘 저녁에는 열이 많이 날 테니까~ 해열제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 3일 뒤에 오세요.”

요즘 수족구가 유행이라 키즈카페도 안 가고 조심한다고 했는데 어디서 옮았는지 모르겠다. 손바닥에 울긋불긋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입 안이 아픈지 차가운 요거트만 겨우 먹는다. 배고플까 봐 평소에 좋아하던 새우볶음밥도 했는데 입이 아프다며 한 숟가락도 먹지 않는다.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는데 한 입만 먹어봐~.”

“목아퍄.”

“그래도 잘 먹고 약 먹어야 얼른 낫지.”

“아퍄!!! 엄마 먹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함미꼬꼬닭”

“할머니네 갈까?”

“응응”


수족구는 병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입, 손, 발에 물집이 생기는 급성 바이러스 질환이다. 영어명도 [hand-foot-and-mouth disease] 얼마나 직관적인지. 입 안에 물집이 터져 궤양이 생기고 이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식사량이 준다. 약도 없고 백신도 없고, 그저 시간이 약이다. 대게 모든 상처가 그렇듯이, 입안에 헐은 상처가 조금 나아져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뛰어놀면 사라진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함미 꼬꼬닭은 우리 가족이 아프거나 힘이 없을 때 먹는 일품요리이다. 나도 어머님표 삼계탕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출산한 지 1년이 조금 넘어서 병원 검진을 받는 중에 왼쪽 가슴 안쪽에 자리 잡은 혹이 6개월 만에 3cm 이상 커져서 5.8cm가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세포증식이었다.

“이거 증식 속도가 빠르고 모양도 별로고 이러다가 나중에 음... 가족력도 있으시네~ 모유수유, 끝나셨다고 했죠? 그럼 시원하게 떼 버리죠?”

동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무작정 수술하기는 겁이 나서 아산병원에 갔더니 똑같이 수술을 권유했다. 세포 주변까지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차가운 수술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서 병원 복도 천장을 바라보았다. 렌즈도 빼서 희미하고 뿌연 천장만 보였다. 그저 어떤 의료사고 없이 살아 나오기를 숨을 쉬고 내쉴 때마다 기도했다. 아이들과 보낸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고,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엄마젖을 찾는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지만 눈물이 수술하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뿌연 병원 천장만 바라보았다.


“아이고 우리 둘째야~”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신 어머님이 현관문 번호 소리가 나자마자 달려와서 안아주신다. 그리고 깨끗이 정리된 침대 위에서 쉬라며 방으로 이끄신다.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셨지만 밖에서 들리는 분주한 소리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한 5분 지났나? 똑똑, 방문을 두드리신다.


“자니?”

“아, 아니요~ 나갈까요?”

“아녀 아녀, 속이 허한데 그냥 약만 먹으면 안 되고, 닭 껍질 다 벗겨내고 담백하게 끓였으니까 밥 먹고 약 먹어. 식탁 위에 올려놨으니까 알아서 먹어~ 나는 또 나가볼꺼니까~ 쉬어”


가슴에 압박 붕대를 칭칭 감고 씻지도 못한 내가 불편해할까 봐 어머님은 방문 너머로 말씀하시곤 외출하셨다. 식탁 위에는 압력솥으로 삶은 삼계탕이 접시 위에 담겨 있고 누룽지는 따로 떼어 꽃무늬 납작 접시에 올려놓으셨다. 숟가락 젓가락까지 꺼내 두셨네. 내가 꾸덕한 누룽지를 좋아하니 같이 먹으라는 거다. 이번에 새로 담근 겉절이 김치까지.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표 사랑의 언어를 알고 있을까. 머리 굴리지 않고 앞 뒤 재지 않고 그저 아낌없이 주는 것은 내리사랑뿐인 듯싶다. 아이들이 영 식욕이 없자 나는 최후의 카드인 어머님께 영상통화를 눌렀다. 부모님들은 ‘영상통화=손주’라는 공식이 있는지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칼 같이 받으신다. 띠리링 띵~ 벨소리 멜로디가 시작하려는 순간 어머님 얼굴이 핸드폰 화면에 나타난다.


“아이고 구여워라~ 함미한테 전화해쪄?”

“함미 꼬꼬닭! 꼬꼬닭!!!”

“알아쪄~ 좀 있다가 엄마랑 아빠랑 손잡고 함미네 와~”


신랑은 퇴근하자마자 그쪽으로 오기로 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어머님 네로 출발했다. 비슷한 시간에 어머님과 동시에 도착했다. 어머님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양손 가득 장을 봐오셨다. 요 앞에 있는 과일집 젊은 사장이 몸이 아파서 곧 가게를 다른 사람한테 넘길 거라며 닭도 두 마리 사고 양파랑 과일이랑 이것저것 좀 샀다며 말씀하신다. 어머님은 한사코 내 도움은 안 받으시고 압력솥에 양파를 넣고 육수를 우려내는 동안 혼자 가위와 칼로 닭껍질을 슥슥 벗기고 집에 남은 찹쌀을 탈탈 털어 넣으신다. 아버님도 퇴근하셨다.


“할아버지 왔다~~~! 둘째네 왔냐?”

“네 아이들이 삼계탕을 먹고 싶다고 해서요.”


오자마자 손을 씻고 아이들과 하이파이브 하면서 아버님은 어머님에게 한마디 하신다.


“애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비법 좀 알려주지 그래요?”


“뭘 또 알려주라 해~

먹고 싶으면 와서 먹으면 되지.”


하고 어머님이 나물을 무치면서 아버님을 힐끗 보신다. 눈치도 없이 왜 그러냐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어머님표 사랑의 언어이자 무기인 것인가.


“맞아요 제가 하면 또 이런 맛이 안 나요.

와서 먹어야 맛있죠.”

어머님은 삼계탕도 하면서 나물을 데치고 양념에 무쳐서 얼른 한 상을 차리셨다. 압력솥에 뜸을 들이고 뚜껑을 열자 치이익 연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삼계탕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옷에 삼계탕 냄새가 베일 지경이다. 쌍둥이가 먹을 수 있게 접시에 닭다리 하나씩 넣고 다른 접시에는 찹쌀밥에 국물을 자박자박 말아서 고기를 가위로 잘게 잘라서 숟가락이랑 주셨다.



“함미 꼬꼬닭 맛이 쪄?”

“(1호) 응! 마시 떠!!!”

“(2호) 마시 떠요!”


민망하리만큼 아이들은 한 그릇을 뚝딱 다 먹고 찹쌀밥을 삼계탕 국물에 말아서 한번 더 먹는다. 어머님의 뿌듯한 마음이 온 집안에 풍겼다. 시부모님 댁으로 퇴근한 신랑도 나도 삼계탕에 시원한 김치를 먹고 빵빵해진 배로 다 같이 뉴스를 본다. 아이들은 뉴스가 재미없는지 작은 자동차를 손에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논다.


“잘 먹었어요. 쉬세요.”

“어~ 조심히 가라. 운전할 때 꼭 잘 보고 다니고, 과속하지 말고 과속하면 안 돼. 뭐가 바쁘다고 과속 허냐 애들 태우고 있으니깐 항상 조심하고”


“안 갈 거야~~~! 뚜박!!!”

“뚜박죠~~~ 더 놀아~~~!!!”


안 간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을 보며 함박웃음 짓는 어머님. 아이들이 집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삐 오느라 수박을 못 사 온 게 못내 아쉬운 아버님. 우리 가정 안에 시간이 한참 흘러도 오감에 새겨진 어머님표 사랑의 언어는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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