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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Kim May 17. 2023

연중 정산 - 23을 맞이하여

2022 회고, 돌아보기와 계획하기

나는 20년에 생각을 멈추었다.

마음에 품고 있던 꿈이 사라졌고, 목표를 잃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만 집중했다.

정체된 하루 하루 속에서 기대감이나 계획은 내려놓고 지금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방 한 구석에 쌓아둔 박스를 열어 그 안에 든 것을 버리고 망가진 옷장을 버리고 새 선반을 사서 차곡차곡 넣었다. 

미뤄둔 글을 썼다. 가족을 챙기고, 그림을 그리고, 식물을 키우고, UX 소통을 시작했다.

지금을 정리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운 행동이었다. 

나는 나라는 단단한 집을 보살피고 가꾸는 데 시간을 사용했다.


불안했다. 불안정과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는 내 세상을 깨부수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경계한다.

1년이 지났지만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았다. 1년동안 나의 절반을 정리했으니, 나머지도 끝내면 좋을  것 같았다.

지난 해를 기반으로 꾸준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내 나름대로 잘 짜여진 계획서를 만들었다.

20년에 시작한 것들을 21년에는 끝내고 싶었다. 하던 청소, 하던 글, 하던 건강관리, 하던 그림, 하던 영어공부. 그리고 수영이 배우고 싶어졌다.


21년이 되자,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열등감이 솟아올랐다.

19년에 무기력하고 20년에 피곤한 사람은 21년에 무료함을 느꼈다.

충만함을 느끼고 싶었다. 달라지고 도전할 기회만 생기면 손을 들어, 나를 몰아세웠다.

직장을 다니면서 외주를 했고, 서울 외곽을 걸어다니고, 한라산을 등반하고, 굿즈를 만들어 전국에 배송시켰다.


20년에 만든 계획은 딱 1달 동안 지속되었다.

언제나 피곤했다. 생각했다. 다음 해에도 어차피 무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을 잔뜩 만들 것이다.

22년에는 딱 기본만 챙기자. 청소, 포트폴리오, 건강관리.

그리고 목표는 아니지만 글, 수영, 여행, 사람이 얻고 싶다고 메모를 남겼다.


22년이 왔다. 

위까지 내가 한 일은 회사에서의 일이 아니라, 그 외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21년 말부터 회사의 일은 평소의 나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외부 업체와 같이 일을 하는데, 내가 하나 하나 꼼꼼하게 챙기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은 커녕 내가 원하는 기본적인 수준의 일도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반쯤 미쳐있었다. 날카롭고 조금만 찔러도 화가 치밀어오르는 사람이 되었다.


반면에 업무 외적으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얻었다.

21년에 관계를 쌓은 사람들과 직접 마주했다.

아껴주고 챙겨주고 속상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갑자기 늘었다.

나는 가장 나답지 않게 행동했다. 활발하고, 웃고, 뛰고, 돌아다녔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삶으로 1년을 살았다.


동시에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나를 피곤해하고 있음도 느꼈다.

이쁨받고 싶었다.

한달 반 간격으로 2~3시간 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사람을 만나고 경치를 즐기고 산책을 했다. 

갈 수 있는 곳은 많았고, 세상은 예뻤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많이 행복해했다. 

조금 더 떠들고 조금 더 웃었다.


아, 수영을 등록했다. 

수영도 꼭 그 때의 나의 모습과 닮아있다.

배우고 싶어서 등록했지만, 운동량은 수영을 배우기 전보다 더 줄었다.

매일 가기 싫어했고, 그래도 가려고 했고, 여하튼 배우기는 배웠다.

추운 겨울에 수영을 하고 나서 냉탕에 앉아있는 것이 좋았다.

고요함과 무게감, 그리고 생이 없는 감각이 좋았다.


20년에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꿈이 사라졌기에 그저 현재를 정리했다.

21년에는 정리를 완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향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22년에는 나에게 만족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는 밖을 보고 살았다.


23년은 폭발하는 한 해가 되었다.

담아두고 미뤄뒀던 것이 터졌다.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던 것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었다.


1월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를 보았다.

그 장소는 그 곳에 있었지만, 나는 광활함보다는 두려움을 더 느꼈다.

내 마음은 그 곳에 있지 않았고, 하지만 그 곳에 있고 싶었다.


2월에는 고장나서 이상함을 느끼다가 그냥 울었다. 책임감이 사라졌다.

막막하고 억울했다.

이윽고 탈수 증상이 생겼다. 머리가 멍하고 손발이 떨려서 반차를 쓰고 회사를 나왔다.

집에 가보니 여느때처럼 부모님이 일상을 보내고 계셨다.


그리고 이내 넘어져서 다리가 찢어져서 꿰맸다. 

2주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다.


3월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예약했고, 일단 멈추기로 결정했다.

남은 건 나아가는 것 뿐.


4월에 말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지금이 조금 더 연장되었다.

계산하고 하나 하나 따지는 것이 지겨워서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다.

앞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시간이 두려워,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자 하는 생각을 했다.

또 여행 준비 때문에 드는 돈이 스트레스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주 한주 여행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여행일 될 것이다.

뒤의 문을 닫고 나면 새로운 길이 열릴까?

정말?


5월이 되었다.

나는 지난 연말이나 올해 초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흘러 있었다.


올해는 목적지가 없다.

나는 멈출 것이다.

목적이 없으니 목표도 없다.


쉬기로 결정하고 실행한 것으로 이미 에너지를 다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내온 시간이 아깝지만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다.

너무 오랫동안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웅얼거리며 살았다.

지겨움이 지겹다.

나아가고 싶다. 그리고 나아가는 것이 두렵다.


땅을 사서 식물을 심고 싶다. 

옆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곳에서 자연과 다름, 아름다움과 여유를 전달하고 싶다.

비록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지만.

내 땅이 점차 아름다워지고, 다른 사람들과 그 공간을 나누고,

그리고 그 공간을 넓히고, 

함께 하고, 웃고,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날씨를 염려하고

그렇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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