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림
한 십여전부터 “오글거린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는데 그 말이 듣기 싫어선지 오글거리는 행동을 조금이라도 안할려고 애썻던 것 같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타인에게 오글거린다는 감정과 표현을 즐겨 한 것도 사실이다. 포장되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거나, 진지한 생각을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오글거린다'는 말. 냉소주의라고 볼 수 있다. 진지한 감정은 불편하고, 진심은 조심스러워졌다. 무언가를 좋다고 말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생기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는 감상적이고, 이 모든 것들은 웃어넘겨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냉소주의자들은 왜 냉소하는가?
냉소주의는 무력감에서 비롯된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좌절, 반복되는 실패,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보상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때 냉소는 모든 시도를 무력화함으로써 상처받지 않게 해준다. 어차피 안되니까 애써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냉소는 현실에 대한 체념을 가장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텐데 왜 사는가랑 비슷함.)
냉소주의자는 도전과 성취의 경험이 적은 경우가 많다.
성공이나 실패를 포함해 무언가를 ‘진심으로 해본’ 경험이 부족할수록, 타인의 시도 역시 공허하게 보인다. 그래서 도전하는 이들의 열정이나 진지함은 그들에게 불편한 감정이 된다. 이 불편함을 비웃음으로 덮는 순간, 자신은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냉소주의는 자기방어기제
냉소주의는 겉으로는 지적이고 여유 있는 태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냉소는 지성도, 통찰도 아니다. 냉소는 조롱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에 가깝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회피와 그로 인한 단절이 그 바탕에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나오는 ‘비아냥 대협곡’은 냉소주의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협곡은 겉으로는 시니컬하고 태연하지만, 실제로는 감정과 감정 사이의 단절을 상징한다. 자기 안의 진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대신, 비웃음으로 감추어진다. 이는 자신과의 단절일 뿐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또한 막는다. 비아냥은 타인에게는 방어막이 되고, 자신에게는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무덤이 된다.
냉소주의자들의 착각
이런 냉소는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두드러진다.
익명성과 비대면성은 발화에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고,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속에서 ‘가볍고 웃긴 말’이 우위를 점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군가의 진지함보다, 그것을 비틀고 깎아내리는 말이 더 쉽게 주목받는다. 결국 냉소는 어떤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이자 폭력적 습관이다.
냉소주의자들은 종종 냉소를 통해 단기적인 효과를 얻는다. 순간적인 우월감, 감정을 억누르는 통제감, 다른 사람보다 한 발짝 물러나 있다는 듯한 태도는 마치 자신이 더 낫고, 더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어떤 삶도 구축하지 못하게 만든다. 냉소는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자신에 대한 신뢰조차 앗아간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반복되는 부조리 속에서도 스스로 삶을 긍정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이야기했다. 시지프는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 속에서도, 그것을 ‘알고도 계속하는’ 자로서 의미를 되찾는다. 냉소주의는 이와 반대 방향에 있다. 바위를 밀지도 않고,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비웃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린다.
냉소주의의 바깥 : 긍정,진심
나부터 진심을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무언가 '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겠다. 그래야만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비로소 드러난다. 비웃음을 넘어서야 진심이 담긴 말이 나오고, 조롱을 지나야 진짜 관계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