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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땡 Jul 05. 2023

여전히 장난감이 좋아 <엘리멘탈> 해피밀

@McDonald's

90년 대 말, 우리 가족은 아빠의 대학원 공부로 인해 미국에 잠시 살았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던 그 어린 나이에 금발에 푸른 눈 사람들 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것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그 시절의 기억은 굉장히 생생하다. 눈이 내 키보다 높이 쌓이던 중서부의 추운 겨울, 아빠의 유학생 동료 가족들과 공원에서 구워 먹던 바베큐, 유치원 합창 대회에서 부르던 아리랑, 친구들과 신나게 게임을 하던 Chuck E Cheese, 체험학습으로 갔던 농장에서 따왔던 사과와 옥수수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중 가장 소소하면서도 가장 귀엽다고 생각되는 기억은 바로 열심히 모으던 맥도날드 해피밀 장난감들이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는 커다란 쇼핑몰이 있었다. 굳이 살 게 있든 없든 슬슬 산책 삼아 다녀오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엄마는 동생 유모차를 끌고, 아빠는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를 타는 나를 케어하며 주말 나들이. 나와 내 동생은 디즈니 스토어를 구경하는 걸 제일 좋아했고, 엄마는 지금은 없어진 서점 체인인 Borders Book Store의 취미 생활 코너를, 아빠는...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Bose 매장을 자주 들렸던 것 같다. 그렇게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레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러면 우리는 푸드코트로 향했다.


내가 먹는 메뉴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맥도날드 치즈버거 해피밀 세트에 음료는 무조건 마운틴 듀. 아빠는 가끔 분수에 던지라고 음식을 주문하고 받은 거스름돈 1센트 페니 혹은 5센트 니클 주곤 했는데, 그러면 나는 해피밀에 내가 원하는 장난감이 나오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졌다. 하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졌던 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적어도 25센트 쿼터는 던졌었야 했나 보다. 그렇다고 받은 장난감들을 싫어했던 건 절대 아니다. <토이 스토리 2> 장난감들 중 악당 저그가 나왔을 땐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한 번은 그 저그 장난감이 나를 쫓아오는 악몽까지 꾸기도 했었으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실망했었나?


WE LOVE YOU LUTZ!!!

내가 제일 좋아했던 해피밀 장난감 시리즈는 Beanie Babies 인형들이었다. 안에 솜 대신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있어 만지는 감촉도 소리도 재밌는 친구들이었다. 하트모양 TY사 로고 태그는 절대 떼지 않는 게 정석. 당시 어떤 인형들이 있었나 인터넷에 찾아보다가 잊고 지냈던 인형들이 너무 많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조합이 아름다웠던 나비, 갈기가 멋졌던 사자, 지느러미 색깔들이 오묘했던 금붕어, 편안하게 늘어진 달마시안, 억울하게 생긴 오리, 그리고 맥도날드에서 받은 건지 따로 구매를 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흰빨파 색조합부터 USA라 쓰인 이름표까지 굉장히 미국미국스러웠던 곰돌이.


Furby라고 부엉이처럼 생겼던 열쇠고리 인형은 언제나 내 가방에 달려있었다. 처음엔 회색, 그다음엔 보라색, 그리고 호랑이 무늬까지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는 열쇠고리가 뿌듯했다. 원래 이 인형은 이마에 있는 센서를 서로 인식시켜 주면 말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해피밀로 받은 인형들은 그 기능은 없었다. 말을 시키면 시킬수록 알아들을 수 없는 퍼비어에서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게 된다는데, 그 과정이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캐릭터가 타고 있는 미니카를 뒤집으면 아래 또 다른 캐릭터가 있던 Flip Car과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미니 스케이트 보드인 Fingerboard도 재밌게 갖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내 동생은 맥도날드 감자튀김 모양의 장난감 전화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삐죽 튀어나와 있는 안테나 튀김을 누르면 따르릉 소리가 났다. 


내가 성인이 되고 미국에 와서 맥도날드를 찾은 적은 거의 없다. 학부 때 가끔 파티를 하다 치킨 너겟이 먹고 싶다는 친구들을 따라간 적은 몇 번 있으나, 가서 햄버거를 산 기억은 정말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아무래도 엘에이에 살다보니 맥도날드 보다는 인앤아웃을 더 찾게 된다. 하지만 <엘리멘탈> 장난감이 해피밀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오랜만에 맥도날드를 찾았다. 내 아이를 위해 해피밀을 주문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에, 나를 위한 해피밀이라니 민망했는데 키오스크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어느 <엘리멘탈> 캐릭터가 나올까 두근거리는 설렘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엘리멘탈>은 사실 미국에서는 그렇게 크게 흥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스파이더버스>의 고공행진에 가려져 보러 가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 현재 개봉 3주 차, 박스오피스 성적은 제작비 $200M에 훨씬 못 미치는 $88M으로 저조하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입소문을 타 역주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 우선 역시 픽사라는 말이 나오는 눈이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엘리멘트 시티는 최근 봤던 것들 중 가장 화려했고, 각 엘리멘트들의 속성을 잘 반영한 다양한 그림체는 보는 재미를 더해줬다. 불은 불답고 물은 물답고 구름은 구름다운 그림체. 또한 개그코드도 나랑 잘 맞아, 최근 본 영화들 중 제일 크게 소리 내서 웃은 것 같다.


무엇보다 이민 2세 한국계 미국인 감독 피터 손이 화려한 영상 속 녹여낸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사실 보는 내내 웃는 와중에도 눈에는 계속 눈물이 고여있었다. 영화 리뷰 사이트들에서 "뻔하고 유치한 러브 스토리"라는 뉘앙스의 리뷰들을 보면 화가 난다. 물론 나도 초반 급전개에 많이 당황하긴 했지만 이건 단순한 러브 스토리가 아니란 말이다! 너희 같이 미국 시민권을 갖고 무지갯빛 하늘만을 보며 살아가는 previleged people이 희귀 꽃이 보고 싶어 찾은 식물원에서 입장을 거부당하는 인종차별을 당해본적이 있나? 나의 존재 자체가 튀는 것이 싫어 망토 속에 숨었어야 했던 적이 있나? 도시의 낙후된 인프라와 무능한 공무원들 때문에 커뮤니티 자체가 큰 피해를 본 적이 있나? "엘리멘트들은 섞일 수 없다"는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취급을 하며 "여기는 너의 고향과는 달라"라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뉘앙스의 말을 하지는 않았나? 이 영화에서 겨우 러브 스토리라는 플롯 하나밖에는 보지 못하는 너희가 안타깝다.


때문에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캐릭터들은 루멘 가족이었다. 이번 해피밀 8종 세트 중 무려 4개가 루멘 가족이었기에,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질 확률이 무려 50%였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귀여운 농구선수 러츠를 받았다. 역시나 원하는 장난감을 갖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신경을 쓴 티가 나는 장난감이었다. 메인 장난감 뒤에 바람모양의 키를 꽂아 누르면 발사가 되는 형태였는데 꽤나 멀리 나가는 것이 누구 장난감이 더 멀리 나가나 대회를 하면 딱일 것 같았다. 또한 해피밀 박스 옆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엘리멘탈 세계관 속 도시들을 여행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연결이 되는데, 받은 장난감을 핸드폰 위에 놓고 탐방하는 도시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 속 빛에 색색깔로 변하는 장난감 구경을 하면 된다. 나름 하이테크 장난감에 반해 엘리멘트 시티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먹은 해피밀은, 우선 치즈버거 옵션이 더 이상 없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조금이라도 소금과 포화지방이 덜 들어간 선택지인 일반 버거와 맥너겟만 제공하는 것으로 2018년에 바뀌었다고 한다. 음료수 역시 탄산음료가 아닌 우유, 초코우유, 사과주스 중 고를 수 있었다. 내 추억의 정크푸드가 이렇게 건강해지다니 조금은 언짢았지만 그만큼 맛있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한 입 베어문 햄버거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너무나도 퍽퍽한 냉동 패티에 채소라고는 째끄만 피클 두 조각과 흩뿌려진 양파. 대충 발라진 캐찹은 밋밋한 빵의 맛을 끌어올려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채 10 조각도 들어있지 않은 감자튀김은 흐물흐물했고, 초코 우유는 내가 싫어하는 미끄덩하고 씁쓰름한 인공감미료의 맛이 강했다. 후식으로 제공된 사과마저도 버거 옆에 있었어서 그런지 미적지근하니 니맛도 내 맛도 아니었다. 이걸 어렸을 땐 그렇게 맛있게 먹었었다니...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겨뒀어야 하나 보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해피밀은 돈 없는 유학생 가족에게 참 고마운 한 끼 식사였을 거다. 우리가 그렇게 자주 디즈니 스토어 구경을 갔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장난감을 샀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할로윈처럼 특별한 날 일 년에 한 번 코스튬을 산 정도? 최근에 엄마와 대화를 하며 그 당시 정말 힘들었다는 뒤늦은 고백을 들었다. 아무리 모아둔 돈으로 유학을 왔다 해도 IMF 때 환율은 거의 2000원을 육박하는데 소득이라고는 아빠가 학교 도서관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다이니, 네 식구 외식 한 번, 옷 한 벌 사기 힘들었다고. 그런 상황에서 당시 $3 정도에 나름 근사한 한 끼 식사와 장난감까지 주는 맥도날드 해피밀은 최고의 외식 옵션이었겠지. 맛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누군가에게 즐거운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걸로 해피밀은 본인 할 일을 다 했다고 본다. 다음번 장난감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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