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포장된 20대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1988 년 88올립픽이 한창이던때 우촌 국민학교 (난 초등학교를 다닌적이 없다) 1학년 3반이던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회사에는 아기공룡 둘리와 날아라 슈퍼보드를 모르는 92년생 아가들이 신입이랍시고 낵타이를 매고 들어와 앉아있다. 내나이 36세.. 그렇다. 이제 나는 명실상부한 아재가 되어있다.
얼마전 미용실을 다녀왔다. 동양인들의 거친 머리는 미국 미용사분들에게 맏겨 놓으면 아주 슬픈경험을 할수 있으므로 난 항상 한국인 미용실을 이용한다. 나이가 좀 있으신 미용사 분이였는데 나에게 한마디를 던지셨다. ' 사장님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순간 머리속에 사. 장 . 님 세글자가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박혀버렸다. 아저씨는 이제 무뎌 졌다. 뭐 내가 아저씨니까.. 하지만 사장님 이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정우성도 장동건도 나보다 더 형이다. 물론 나와 생김새나 기럭지가 다를지언정 생물학 적으로는 분명 내 육신이 그들의 것보다 몇년 더 신형이다. 그래 젊어질 필요가 있다. 큰맘을 먹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행한다는 (하지만 실상 몇년전부터 유행했던) 투블럭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뿔테 안경에 투블럭, 니트 스웨터에 롤업 팬츠! 이정도면 소위 완소남친 패션 아닌가? 100미터 전방에서 보면 20대로도 보일수 있겠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너무 튀는건가? 라는 불안함에 회사를 출근했는데.. 제길..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코맨트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그냥 아. 저. 씨. 드디어 친한 한국인 여직원 하나가 알아본다. '어머! 머리 이쁘게 잘렀네! 강호동 같아!!' OTL (쓰다보니 OTL 이것도 옜날꺼다.)
다들 처음 30대가 되었을때 충격을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35세때 그 충격이 왔다. 그나마 마지막 자존심이던 30대 초반 이라는 타이틀을 더이상 쓸수 없을때 모든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훨신전에 변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이때쯤 인정하기 시작했다는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것 같다. 더이상 학생이라는 호칭을 들을수 없다는것.. 클럽에 갈수 없다는것.. 좋아하는 걸그룹들의 나이를 들을때마다 왠지모를 죄책감이 드는것도.. 어려보인다는 말이 좋아지기 시작한것도..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후배들이 모두 아줌마가 되어버린것도.. 바뀐걸 나열하자니 끝이 없다. 그렇게 수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는 점점더 빠르게 나에게 다가온다.
뭐 꼭 클럽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심지어 젊을때도 클럽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진짜 찌질하게 가난했던 20대는 그리 행복하지도 않았다. 안정된 직장, 행복한 가정, 내집 장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것들이 20대에 늘 고민하고 꿈꾸던 그런것들이 아닌가.. 그 힘든 시간을 다시 돌아가 견딜 자신도 없다. 딱히 돌아갈 마음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난 그때를 그리워 하고 있다. 실상은 늘 힘들고 찌질했지만 30대의 나에게 20대의 기억은 찬란하게 포장되어 있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 하는건 20대의 젊음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또는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변화와 함께 점점 더 멀어져 가는것들에 대한 불안함도 한몫 할것이다. 아빠차 소리만 나오면 맨발로 마당까지 뛰어나오는 우리 꼬마아가씨와 개구장이 아들놈... 아이들 재워놓고 마누라님과 먹는 맥주한잔, 한손에는 토끼인형, 한손에는 아빠손을 꼭 잡고 자는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 내가 지금 이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있는 이 기억들이 10년후에는 지금 내가 그리워하는 20대의 기억처럼 찬란하게 포장되어 내 마음을 채우고 있겠지..
시간이 지나서 정말 사무치게 그리워할 이시간.. 예쁜 아이들이 커가고.. 가장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은 여기저기 아픈데 없는 몸.. 이런것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서 어느 병원 침대에서 (운이 좋다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 숨을 힘들게 쉬고 있을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을 생각하며 마음이 따듯해질수 있는 그런 기억이 될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