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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Mar 29. 2016

내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질 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때 난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얼마 전 장인어른이 미니벤을타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언질도 없으셨다. 며칠 후에 연락이 오셨다. 전국일주를 하시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추운 뉴욕을 벗어나 따듯한 서부로 향하고 계셨다. 3주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하실 것이다. 아마 평생 처음 하시는 본인만을 위한 여행일 것이다. 그 소식에 부러움, 안타까움, 미안한 감정이 뒤섞여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인어른은 그렇게 앞으로의 삶을 정리하고 준비하시는 것 같다. 


미국에 온 대부분의 1세대가 그렇듯이 우리 장인어른은 평생을 치열하게 사 신분이다. 한국에서의 사업실패로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에 오셔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셨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휴가란 것을 평생 몇 번 써보신 적도 없고 비행기 타고 출장을 가라고 출장비가 나오면 밤새 몇 시간이고 운전을 해서 다녀오시고는 출장비를 아끼셔서 살림에 보태셨다고 했다. 타고난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셨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어려움이 없으신 분이었다.


명퇴. 생각지도 못하게 다가온 소식에 많이 당황하셨을 것이다. 아직 한참을 더 일할수 있는데 회사 안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명퇴를 하시게 되셨다. 명퇴 후 장사를 하시려고 몇 번 시도하셨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님은 할 일을 잃으셨다. 사실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자식들은 이미 장성했고 노후를 편하게 사실만큼의 준비는 해 놓으신 분들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꿈꾸는 안정적인 노후와 자기만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 순간을 맞이한 것 이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하루하루 늙어가셨다.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으셨고 괴로워하셨다. 평생을 엔진이 터질 듯이 쉬지 않고 달려온 기차에게 하루아침에 자신의 일이 없어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본인도 가족들도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겪어왔다. 그렇게 많은 혼란과 아픔, 당황스러움을 정리하시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신 게 아닌가 싶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아직 많이 있다. 지금의 우리 가족은 내가 이끌어 가야 한다. 아내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물질적인 부분도 책임을 져야 하고 교육이나 행복한 가족관계를 위해 퇴근 후나 주말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회사에서는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한다.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해야 할 일은 많다. 나는 없어지고 가장이라는 이름이 된 순간부터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 할 일이 우선이 되어 있다.  


운동할 때 쓰는 10불짜리 장갑을 살까 말까 며칠을 고민하지만 아이들이 필요한 건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예를 들어 퇴근 후 한 시간 운동 이라던지..) 미안하게 느껴져서 서둘러 집으로 가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내 돈은 내 돈이 아니고 내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며 나는 내가 아니다. 


나에 대한 모든 소유권은 나의 가족이 가지고 있다. 나는 없어지고 어깨에는 책임만 남았다.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 아이들이 커서 더 이상 나의 도움이 필요 없을 때, 회사에서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아 출근할 곳이 없을 때,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할 필요도 능력도 없어졌을 때, 가족에게 넘어갔던 나에 대한 소유권이 더 이상 그들에게 쓸모가 없어서 온전히 나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온전하게 나에게 돌아온 내가 낯설지는 않을까? 어깨의 무거운 짐이 치워졌을 때 상쾌함보다는 상실감이 더 크지 않을까?  


내 어깨에 얹혀있던 책임이 다 사라졌을 때 아마 나에게 들이닥칠 첫 번째 감정은 허무함 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꾸리고 그들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평생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 저 있는 아내의 삶에 초점이 그때 가서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살짝 기대는 되지만 나중에 실망할까 봐 안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가족의 필요와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바라볼 때 내가 그들을 위해 살았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싫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건 서운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지금 나의 삶의 중심이 나에게로 옮겨왔지만.. 아버지에게 쏟는 관심과 시간이 내 가족에게 쏟는 그것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그것이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 것처럼.. 그냥 그건 세월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나의 걱정은 그때가 왔을 때 그 허무함을 어떻게 극복하고 나에게 온전히 돌아온 나의 시간을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아마도 지금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많이 약해졌을 그때 어쩌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준비가 필요하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는 준비. 외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 내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준비.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쓸쓸할 것 같다.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것..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가족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함께 있어줘서 참 다행이다.


영화 은교의 대사가 문득 생각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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