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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조사는 처음이라서

첫 현지조사를 다녀오고

by 또봄
가정방문 때마다 내어주시던 차와 간식들

좋은 기회로 K 기관의 후원을 받아 약 2주간 몽골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우리가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의 수요와 현지 상황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출장 전, 사업 기획과 조사에 필요한 방법론을 익히는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짧았고, 교육도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다 보니 깊이 이해하긴 어려웠다. 이 분야에서 4년간 일해왔지만, 여전히 배울 것은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계획서를 작성했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방향을 여러 번 바꿨다. 처음 기획했던 아이템도 바뀌고, 조사 주제도 몇 차례 변경되었다.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이게 과연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모든 것이 확신 없이 느껴졌다.

FGD를 위해 준비한 다과들


현지에 도착한 뒤 열흘간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감기와 두통에 시달렸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면역력이 약해졌고, 조사 첫날부터 코가 막히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기에 약에 의지하며 업무시간만큼은 어떻게든 버텼다. 하루 종일 인터뷰, 설문조사, 내용 정리, 영수증 처리 등 일이 끊이지 않았다. 가끔은 '혹시 정말 아픈 게 아니라 일하기 싫어서 아픈 걸까?' 싶기도 했다.

사흘간 열심히 돌아다녔던 바가노르 곳곳

다행히 계획한 일정은 무사히 마무리했고, 정리되지 않은 자료를 한가득 들고 귀국했다. ‘일단 뭐든 많으면 쓸모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내용이 뒤섞인 자료들을 최대한 긁어모았다. 귀국 후에는 또 다른 출장이 이어져 쉬지도 못한 채 보고서 제출일이 다가왔다.


열심히 작성한 보고서가 95%쯤 완성되었을 무렵, 큰일이 벌어졌다. 모든 보고서와 증빙서류가 담긴 USB를 분실한 것이다. 스스로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그것도 마감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행히 직전에 팀 단톡방에 공유해 둔 자료와, GPT 선생님과 클로바 선생님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내용을 복구할 수 있었다. 보고서와 정산까지 마무리한 뒤에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며칠 후, 잃어버린 USB도 결국 찾았다. 다행이긴 했지만, 그 며칠간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또다시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번 조사를 준비하고, 다녀오고,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배운 것들이 있다.

마지막날 밤

1. 현지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현지에서 정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지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지인이며, 그들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듣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려면 언어 장벽을 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믿을 만한 통역이 있어도 어느 정도의 의역은 피할 수 없다. 진심을 이야기하려면 편한 사람이 필요하고, 낯선 외국인과 언어가 다른 상황에서는 그 관계가 쉽지 않다. 현지어 능력이 곧 신뢰와 연결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2. 사전 협의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규정의 범위 내에서 인건비를 드렸지만, 상대방은 만족하지 못했고 출장 후 좋지 않은 연락을 받았다. “이 정도만 드릴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명확히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로는 그분과 연락이 조금 서먹해졌다(물론 나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3. 업무분장은 미리, 명확하게
현지에 도착해서야 업무를 나눴는데, 다행히 큰 충돌 없이 잘 진행되었다. 하지만 사전에 역할과 기한을 분명히 정했다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부분도 미리 조율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고된 여정이었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다음 발걸음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USB는 제발 제자리에 놓자.


그래도 우리 다 처음이었는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더 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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