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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09. 2019

나도 조커를 보았다

JOKER : His Behind story

나도 드디어 조커를 보았다.


올해 7월부터 인터넷에 뿌려진 짧은 영상 떡밥들을 보며 애가 타게 기다렸는데 그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영화라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다.


요새 광고가 전부인 영화도 많아서 보기 전까지 불안했다. 하지만 보면서 든 생각은 ‘마블 영화인데 예술 영화 같잖아?!’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국사 과목을 들었던 날에 국사선생님에게 들었던 첫 번째 가르침이 기억이 났다.


-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우리는 다 함께 중학교 1학년이었고 이미 히스토리가 우리말로 역사라는 뜻이라며 뭘 다시 뜻을 묻는 거지? 이미 답을 말하신 거 아냐? 이렇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훗, 바보들)


선생님은, history라고 썼던 그 옆에 다시,


his’story


라고 칠판에 쓴 다음 말씀하셨다.


-그의 이야기, 혹은 그가 남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누굴까? 승리자겠지. 이긴 사람이 진 사람 입장에서 서술해주지는 않을 거야.


승리자가 후대를 위해 글 쓰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남기게 했다면 아마 자기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남겼을 거다. 뭐 그렇다고. 그걸 항상 염두에 두고 역사를 바라보면 좋겠다, 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역사의 뜻을 알았다. 그날 그러고 수업도 했는데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이라곤,


역사(hi.story)가 이런 뜻이라니!! 였다.



조커를 보며 이건 history가 아니구나. 배트맨의 빛을 강조하기 위해 어둠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존재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아서 정도의 상황이라면 저 정도 되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를 둘러싼 세상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보신 분도 아직 있겠지만 스포 아닌 에피소드 하나 말하자면 지하철에서 증권맨 세 놈 쏘아 죽인 건 아주 잘한 행동 같다.


나는 그가 악당 같다는 느낌보다 궁지에 몰리고 몰리다, 살기 위해 결국 영웅에 필적하는 ‘어떤 힘(power)을 갖게 된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가 그렇게 미치게 된 이유를 섬세하게 그려낸 스크래치 미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색으로 스케치북을 모두 칠한 후 그 위를 다시 검은색 크레파스로 덮어버리고 그 위에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면 그 아래 다양한 색이 선과 그림이 되어 나타나는 그림 말이다.




이건 승리자의 이야기가 아닌, 배트맨이라는 빛에 가려서 어둠이라고만 생각했던 그에게 숨겨져 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생각만큼 멋지고 생각보다 아름답고, 그보다 더욱 묵직한 그의 슬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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