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기

작가도 업주하고 거래처 잘 만나야 한다

by 시은


베테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서도철: 아직도 물류쪽 경기 안 풀려요?


배철호: 형사님, 우린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업주하고 거래처 잘 만나야 돼.

일만 많으면 뭐해요. 제대로 받질 못하는데.


서도철: 요즘도 일당 떼먹는 새끼들이 있어요?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들으니 좀 씁쓸하다. 영화산업에서 시나리오 작가들의 처우가 화물 기사들보다 나을 게 없다.


3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부산에서 오랜만에 알지 못하던 친척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내가 서울에서 일 하면서 글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척들이 어, 누구도 시나리오 작가잖아. 라고 말해주셨다. 고모할머니의 아들이라는데 사실 거의 태어나서 처음 뵙는, 모르는 분이었다.


나에게는 오촌당숙님인데 당숙님이라고 부르자 당치 않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본인 이름이 나오는 자기 작품을 쓰는 건 아니고, 회사 대표가 한국 소설 중에 괜찮아 보이는 스토리가 있으면 영화판권을 사서 시나리오화하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물론, 처우가 다 같지는 않겠지만, 가장 최근에 했던 작업은 3개월 기한에 500만원 받았다고 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러고 시나리오화된 것을 보내주고 나서는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는 이게 마음에 안 든다, 저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 지적을 엄청 한다고 했다. 지적할 수 있다. 월급 주는 사람이 보기에 완성된 게 마음에 안 들었으면 지적해야 하는 게 맞다. 상업영화는 최소 몇 억에서 수십억의 자본과 수백명 가까운 인력이 들어가는 ‘산업’이고 ‘일’이니까.


그런데 우리 당숙님이 비록 좋은 대학의 영화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지만, 그 대표님 보기에 능력이 너무 부족하고, 진짜 같이 일 못 하겠으면 자르고 다른 사람을 쓰고 제대로 된 페이를 지불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한달에 200만원도 아니고 3개월에 500만원은 뭘까.


당연히 4대보험도 안 들어줬을 텐데. 저걸로 6개월인가 더 들들 볶였다는데 결국 제작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다른 일거리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걸핏하면 연락해서, 근데 말이야, 김작가, 근데 저 부분 말이야, 김작가.


듣는 내가 다 혈압이 올랐다. 6개월동안 들볶이고 수정을 해줬으면 그 작업에 대한 수고비는 받았느냐고 했더니 말끝을 흐렸다.


그 대표님은 그 작품 진짜 제작은 할 건지, 왜 영화화하고 싶으신 건지 물어는 봤냐고 했더니 부인이 재밌게 읽어서라고 하셨단다. 대표님 부인이 읽기에 재미있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도 그거 영화로 제작 안 됐다.

도대체 당숙님은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는 걸까. 뭘 해도 저것보단 많이 벌 것 같았다. 여자도 못 만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라면 안 만날 거니까.


내가 먼저 서울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일어서자, 서울에서 언제 한번 술 한잔 먹자고 하셨는데 바쁘게 사느라 나한테 연락하셨는지 모르겠다.


부디 지금쯤, 혹은 이미 당숙님도 부디 꿈을 포기하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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