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기

타짜 아니면 작가_2

by 시은

내 얼굴에 하고 싶은 말이 남은 표정이 보였나 보다.


-더 말해봐.

-그리고 아빠 때문에 이 판 깨진 것도 솔직히 기분 안 좋아요.


짜증이 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아빠 앞이라 순화해서 말했는데 어차피 아빠가 그 미묘한 배려를 깨달을 기분이 아니셨나 보다.


-어쭈. 그래서 이걸로 뭐 타짜라도 되시겠다 그 말이니?


사실 타짜가 뭔지 몰랐다. 그냥 카드로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직업군 정도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한테 아무런 피해 안 주면서 이렇게 사람 심장 뛰게 하는 일이면 좋은 일이고, 돈까지 벌 수 있는데 안 될 이유는 뭐 있어요. 잘만 하면 큰 돈도 벌 수 있겠는데.


-안 돼.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생각해.


-싫어. 난 커서 이걸로 밥벌이 할래요. 이거 엄청 좋아, 딴 거 하기 싫어.


-안 돼!


격렬한 꾸중과 설득, 잔소리가 더 이어지긴 했지만, 엄마가 애들 키 안 큰다고 자야 한다고 해서 이 날의 대립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끝까지 이걸로 밥벌이하고 싶다고 뜻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아빠가 다시 카드를 하자고 했다.


-니가 이번에 아빠한테 돈 더 많이 따면 나중에 타짜 되는 거 안 막을게.


나는 말도 못 하게 잃었다. 그야말로 싸그리 털렸다. 그 첫날의 게임은 아빠가 전부 봐줬던 거였다. 우리랑 몸으로 놀아주기 싫어서. 따야 재미있어서 계속 하는 거니까.


결국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돈 다 잃어서 우는 거였는지, 내 생애 첫 꿈이 좌절되어서 우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빠는 울고 있는 나에게 나 정도 실력으로 타짜는 절대 못 될 거라고 했다.


실력 외에도 불리한 몇 가지 이유를 더 열거해주었다. 손이 작은 것도 불리한 이유였다. 이왕이면 손이 큰 게 더 좋다고 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패에 따라 그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도 타짜가 되기에 적합한 자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 자신도 타짜 발끝 축에도 못 낀다고 사실 이거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밥벌이할 만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실망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아빠가 절대 반대 안 할게.


그리고 며칠 뒤 책을 읽다가였는지, 만화를 보다가였는지 문득 나도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잘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도박처럼 뭔가 심장을 움켜쥐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작가가 밥벌이가 잘 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고민에 가득 차서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나 타짜 그거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생겼어. 근데 별로 안 좋은 거야.

-뭔데?

-작가. 근데 그거 밥벌이를 잘 못할 수도 있는 거래.


그때 아빠 표정이 밝아졌다. 아빠가 말했다.


-딸. 괜찮아. 그거 좋은 거야. 타짜보다 훨씬 좋은 거야. 그거 하려는 거면 마흔 될 때까지 아빠 등골 뽑아먹으면서 해도 아빠가 응원할게. 마흔까지는.


작가도 안 되긴 했고, 어쨌든 타짜는 내 첫 번째 꿈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빨리 포기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내 성격상 몰래 도전해 볼 수도 있을 법한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아주 크게 잃고, 그 이유까지 상세하게 알고 나니, 더 이상 애정이 생기지 않았고, 그래서 노력할 의지를 상실해서 빨리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빠가 나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느라 너무 탈탈 털어서 카드와 화투 등에 대한 흥미가 확 떨어졌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카드나 화투 자체가 모바일게임으로도 즐겨지지가 않는다.


그때, 타짜만 아니면 뭐라도 좋고, 마흔까지는 등골 뽑아먹어도 된다는 아빠의 말이 작가가 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가장 든든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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