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필요해
-난, 정말 니가 필요해.
내가 이별을 말할 때, 상대방에게서 이 말을 들으면 ‘이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고 내 인생을 위해 이별이 옳다는 걸 ‘똑똑히’ 알면서도 꼭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생각의 차이를 발견했거나, 용서할 수 없는 행동(남들이 보기에 별 게 아니든 말든 내 기준에)이나 말을 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몇 번이나 반복된 상황에 참고 참다가 결국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닫고 이별을 말한 경우인데도 저 말에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그렇다고 이별을 무르지는 않았지만.
오늘 심리학과 관련된 어떤 책을 읽었다.
그 중에 인상적인 내용은 한 여자가 직장 동료였던 믿음직하지 못한 동료와 함께 동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함께 하기가 아무래도 너무 심란해서, 심리학 상담사를 찾았고, 그 상담에서 얻은 조언을 토대로 겨우 그 상황을 빠져나온 이야기였다.
그 여자가 전 직장동료의 제안을 거절 못 하게 했던 마법의 주문은 이거였다.
‘니가 필요해.’
그녀는 위험천만한 계약조건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가 제안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운 좋게 적절한 시기에 법적 조치를 취해서 서명을 사용할 수 없게 할 수 있었고, 출자금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저 말이 감정적으로 얽힌 연인 사이가 아니라, 이성적인 금전적 인간관계나 사업 관계에서도 듣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심장을 움직이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필요’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가 궁금한 거다. 내가 그 말을 알고, 사용하고, 들으면 무슨 뜻인지 알긴 아는데, 정말로 무슨 뜻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도대체 ‘필요’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검색엔진으로 검색했다.
필요 (必要)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이게 이런 뜻이라니. 필요, 라는 말이 이 정도 뜻이 전부였다니. 내가 너에게 소중하거나, 중요하거나, 다른 것보다 최우선이다, 뭐 그런 게 아니었다.
네가 필요해, 라는 말은
나는 너에게 반드시 요구하고 싶은 게 있어, 라는 뜻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그 ‘필요’하다는 말 뒤에, 뭘 해주겠다는 약속이나 보상은 없다. 상대방을 붙잡는 절박하고 안타까움이 가득 담겼다고 생각한 저 말의 속 뜻에 사실 우리가 기대한 사랑이나, 뭐 기타 우리가 상상했던 달콤한 감정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거다.
나는 왜 저 말을 ‘나는 아직 널 사랑해’ 라는 뜻, 혹은 그 비슷한 뜻으로 내 멋대로 자동 번역해서 이해했던 걸까.
검색엔진에 ‘필요’라는 뜻만 검색해도 이렇게 확실해지는데.
혹시 니가 필요해, 라고 말하며 붙잡는 사람이나 상황이 있다면 거절하자. 돈이든, 사랑이든, 뭐든. 그 말은, 너를 사랑해 가 아니다.
‘너에게 반드시 요구하는 게 있어. 그래서 놔주기가 싫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