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실은...
오늘 다른 팀의 동갑내기 한분이 퇴근하시다가 화장실에서 나와 마주쳤다.
-시은 씨는 왜 결혼 안 했어요?
-저 사실은...
하고 말을 아끼자, 혹시 갔다 오신 거냐고 물으셨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요즘 세상에 이게 뭐가 흠이라고.
-돈이 없어요. 그래서 결혼을 할 수가 없어요.
결혼하면 다 돈이라던데, 결혼식부터 해서 집도 그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라는데, 돈이 없다.
남자가 있어야 결혼을 하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돈이 없다. 다행히 나만 없는 게 아니라 남자친구도 돈이 별로 없다. 더 다행인 건 둘 다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둘 다, 비자발적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가끔 어디 가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혼주의자라고 밝히면, 비혼주의자인데 왜 연애하시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정말 죽도록 비혼이 좋아서가 아니라 결혼할 형편이 안 된다.
또, 결혼 자체가 그렇게까지 매혹적인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물론 구구절절한 내 마음과 이런 상황까지 털어놓진 않았다.
-와, 좋겠다. 축하해요. 부럽다. 시은 씨가 이긴 거예요. 안 하는 게 좋아요. 결혼 안 하실 수 있게 계속 돈이 없길 제가 빌어드릴게요.
좋은 건가.
돈이 없는 건 슬픈데 그게 결혼 안 해도 되는 이유가 된다는 게, 그것도 이런 저런, 너저분한 충고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아주 깔끔한 이유가 된다는 게 너무 좋다.
계속 좋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