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좋은 글이 읽고 싶어
영화 시나리오 아카데미는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진행된다.
나는 영화 시나리오 관련 아카데미만 주로 다녔지만 드라마 작가를 준비하는 방송작가 관련 연수원이나 아카데미도 수강기간은 비슷하단다.
6개월 안팎이 아주 긴 시간은 아니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매주 혹은 격주로 치열한 피드백을 주고받다 보니, 수강기간이 끝날 때쯤이면 동료애 혹은 전우애 비슷한 게 생긴다.
지적을 하거나 받는 이유는 글마다 다양하다.
소재가 별로라서, 캐릭터가 별로라서, 극의 전개가 지루해서, 인물이 너무 속물적이어서, 내용이 잔혹해서, 개연성이 없어서, 진부해서, 너무 판타지여서, 제작비 고려를 안 해서 등등.
가끔 내가 보기엔 장점으로 보여 칭찬했는데, 누군가에겐 단점으로 지적되고, 나는 단점이라고 지적한 부분을, 다른 누구는 동일한 부분을 장점으로 칭찬한다.
그렇게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글을 쓰기가 힘들다.
어찌 됐든 시간과 노력을 쥐어짜가며 고생해서 쓴 글을, 처음 보는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지적받고, 욕을 먹다 보면, 수업이 끝날 때쯤 서로 불쌍하다, 싶은 동질감으로 묶인다.
수업이 진행하는 기간 동안 기력이 많이 소진되기 때문에 하나의 수업이 끝나면 강사님도 휴지기를 가진다. 마치 안식년이나 방학처럼.
어느 마지막 수업 날, 뒤풀이를 가지면서 강사님이 수강생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꼭 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허심탄회하게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강사님, 쉬시는 동안 뭐하고 싶으세요?
별다른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사님이 이제껏 망설임 없이 척척 대답을 해주시다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셨다. 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하셨다.
-저... 사실... 푹 쉬면서 저도 좋은 글을 좀 읽고 싶어요. 다 는 아니지만 여러분 글 중에 가끔, 말하고 싶은 내용이 뭔지도 모르겠는, 이런 글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것은 물론, 맞춤법조차 엉망진창인 글도 많았어요. 글이라기보다 이건 뭐, 한글 쓰레기 같기도 해서. 진짜.... 휴.... 이게 일이라서 다 읽기는 했지만 읽기 싫고, 힘들었어요. 쉬는 동안만이라도, 저 자신에게, 진짜 작가가 제대로 쓴, 좋은 소설, 좋은 글을 좀 읽게 해주고 싶습니다.
내 시나리오도 그 강사님한테 고통을 준 한글 쓰레기 중 하나였을까. 아닌 거 같지만 사람 기준은 모르는 거니까 확신은 못 한다. 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좋은 글의 기준이 아주 명확하진 않지만 누가 봐도 좋은 글과 누가 봐도 아, 이건 그냥 자기 안의 악감정을 털어내려고 쓴 한글 쓰레기구나 하는 글이 있긴 있다.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쓰지만 사실, 내 마음은 작가보다 독자이기를 원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사실, 요즘은 쓰기보다 그냥 읽고 싶다.
많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