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기

다른 잘 하는 것

by 시은


아빠는 내가 책 읽는 것을 무조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칭찬해주곤 하셨다.


공부하는 거 아닌데.


아빠를 속이려고 한 적은 없다. 다만 나는 만화책을 볼 때도 책상에서 책을 들고 정자세로 읽는 게 좋았다. 그렇게 자세를 안 바꾸고 몇 시간이고 읽으니까 아빠 눈엔 그게 항상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셨나 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8시간 동안 한번도 자리를 안 뜨고 책을 읽는다고 아빠가 칭찬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때 기른 집중력을 요즘은 미드 볼 때 사용해서 쉬는 날 12시간 정도 화장실도 안 가고, 배고픔도 참으며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보물섬>과 <나나>, <소년챔프>를 읽을 때도, <원피스>도, <슬램덩크>도 그런 자세로, 저 정도 집중력으로 읽었다.


책을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모두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되는 건 아니었다. 공부할 때는 또 저렇게 집중이 되지도 않았다.


그냥 난 책만 많이 읽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적이 잘 나온 적이 있긴 하지만, 딱 한 번이었고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뛰어난 성적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때 뭔가 사람들이 다르게 봐 주는 느낌이 있긴 있었다. 그 때 다들 이 맛에 공부 잘 하고 싶은 거구나 싶긴 했다.


언젠가 공부를 잘 하고 싶다고 아빠한테 고백한 적이 있다.


-딸, 공부 열심히 하잖아.

-책 읽는다고 그게 공부는 아니야, 아빠.

-아빠는 니 나이 때 책 하나도 안 읽었어. 그 정도면 공부하는 거야.


나는 정색을 하며, 공부가 재미있긴 한데 어떤 때는 선생님이 설명 끝내고 이해했지? 하고 넘어가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고 머리에 거의 들어오지는 않았다고, 내 심정을 말하고 싶은 걸 참는다고 말했다. 딴 생각을 하다가 머리에 안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집중하고 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심정은 정말 답답했다.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부를 좋아하는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딸, 딸이 공부 못 하는 건 니 탓이 아니야.

아빠도 공부 잘 못 해서 실업고 갔고, 엄마도 인문계 나왔지만

공부 그다지 잘 못 한 거 알지? 그거 니 탓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근데 아빠, 난 잘 하고 싶은데?

-미안해…….

-왜 사과해?

-공부라는 게 잘 하고 싶다고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공부머리에 한계는 있어. 그건 알고 있어야 해. 다른 잘 하는 게 있을 거야.


도박도 못 하고 공부도 못 하는 내가 정말 내가 잘 하는 게 있을까. 잘 못 하는 것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정말 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까지 왔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어서 여기까지라고,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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