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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Dec 20. 2019

먹고살기 힘들다. 고니야.

라는 대사가 있다

이 대사는 <타짜>에서 정마담이 슬립 차림으로 호텔 욕조 위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하는 혼잣말이다. 명장면과 명대사가 너무 많은 영화라 거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이지만.


사진출처: <타짜>


뒤에 고니야, 를 빼면 이 말은 정마담만 하는 말은 아니다.

현금을 쌓아놓고 사는 정마담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가 아닌, 인생에서 저 대사를 칠 때는 진짜, 돈이 더럽게 없어서일 경우이다. 나의 경우 정마담 하루 수입이 내 연봉만 되어도 저 말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만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 연봉 몇 배는 될 거니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1주일에 한번 정도의 루틴으로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때  그 문제는, 내가 잘못한 문제도 아니고 회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세밀하게 들어가서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심지어 나에게 문제제기를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은 그분 잘못도 아니다. 아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정말 그럴만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간혹 거기에 개인적인 짜증도 같이 묻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상황은 흘러, 어쩌다 보니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은 지점에, 그분의 문제 해결 욕구가, 그분의 감정조절의 실패와 함께 내 눈앞에 시한폭탄처럼 떨어진다.



1+1+1이 놀랍게도 100의 짜증이 되어 그 시너지 효과의 화살은 나에게 꽂힌다. 가끔 그 화살에 맞고 울 때도 있다.



정마담 얘기를 하려던 건데 나도 모르게 내 넋두리가 새어 나오고 말았다.



다시 핵심으로 돌아가자면 정마담이 정말 돈이 없어서, 공과금과 생필품 사고 나면, 화장품도 바닥까지 다 써가는데 이번 달 방세, 카드값 빼고 나면 쪼들릴 것 같아서 그렇게 슬픈 표정으로 담배 피우면서 먹고살기 힘들다... 고 중얼거린 것은 아니다.


사진출처: <타짜>



부유함과 별개로, 그녀가 꿈꾸던 삶은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아니, 상상도 못 했을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예전에 뭘 하고 싶었는지 기억도 안 날 것이다.



아마도, 엉겁결에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용만 당하다 버려졌을지도 모를 이 처참하고 참혹한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지만 이대까지 나올 정도로 명석했으니 생각지도 못한 위기상황에서 눈앞의 일을 잘 해결했을 것이다. 가끔은 예기치 못한 운도 따라줬을 것이고, 상황을 봤을 때 그렇지 않겠다 싶으면 개수작도 서슴없이 부려서 자신의 삶에 유리한 쪽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양심의 자리는 없다. 그녀에겐 매번의 선택이, 생존이 갈리는 문제들로만 눈앞에 있었을 테니.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쌓여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화투판의 설계자로 살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이제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마담이 어디 가서 이력서 넣고 취업을 하겠는가, 장사를 하겠는가.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때 어떤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설계자의 삶이 그녀에겐 ‘일’이다. 어쩌면 이제 그 일이 전부일 것이다.



돈이 많든 적든, 삶의 무게는 각자 어깨에 얹혀 그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게 한다. 어깨 아래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든, 원치 않는 방식으로든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분명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펼쳐져 있지만, 이 세상이라는 현실이 먹고살기 힘들다, 는 생각만은 같을 것이다. 그녀도, 나도.



사진출처: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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