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착한 선생님일까 나쁜 여자일까
요즘 생각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있다. 고3 때 물리 선생님이다.
사실 수능을 앞둔 문과 학생들에게 물리 수업은 수능과 내신 모두에 비중이 크지 않아서 대놓고 다들 자는 수업이었다.
40명 중에 35명 정도가 잤다. 3명 정도는 눈을 뜨고 있는 걸 본 것 같다. 물리 공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런데 나는 35명 중에도, 3명 중에도 속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창밖을 주로 바라보곤 했다.
우리 학교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3학년 교실인 3층에서는 바다가 바로 보였다. 항간에는 원래 우리 학교 자리가 호텔 자리였는데 환경 및 기타 행정적인 이유로 호텔이 들어서지 못하고 학교로 용도 변경되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 정도로 지리적 위치가 좋아서 바깥 풍경이
훌륭했다.
밖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고3인 나에게 뭔가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이 좋은 걸 친구들은 왜 안 볼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바다였다. 나는 지금도 창 밖을 바라보던 행동이 크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티 나게 다른 과목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내가 창밖을 보는 게 비록 티는 났겠지만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35명은 티 나게 자고 있었고,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수능이 100일 정도 남았던 어느 날 갑자기, 수업 도중에 ‘너희 반에 공부 안 하는 애 때문에 수업 들어오기 싫어. 이제 안 들어올 거니까 너네끼리 공부해!’라는 말과 함께 그 선생님이 나가버렸다. 수능이 100일 정도 남았는데.
우리 반에 그녀의 수업 시간에 물리 공부를 안 하는 아이가 37명인데 왜 하필 나만 싫어하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러고 나가자마자 우리 반 반장을 포함한 몇 명이 나에게 와서는 선생님이 너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으니 사과를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부탁했다.
솔직히 대다수는 왜 저러고 나갔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좀 지나가지, 30대 중반 노처녀 히스테리 아니겠냐고 어이없어했다. 요즘에는 미혼인 남자와 여자가 너무 많아 아무도 30대 중반에게 노총각, 혹은 노처녀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17년 전에는 그랬다.
죄송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하니까 선생님께 사과할 말을 잘 정리해서 물리실에 갔다. 솔직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서 진심을 담은 사과는 아니었다. 그래도 학교 안에서 학생에게 선생님만 한 권력자도 없으니까 최대한 공손하게 사과드렸다. 제 짧은 생각으로 선생님 수업 시간에 무례하게 있어서 죄송하다, 앞으로 정말 주의하겠으니 우리 반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씀은 거두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드렸던 것 같다. 내 행동이 그렇게 무례하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선생님 기분을 최대한 빠르게 풀어드리고 싶었다.
-나, 니 잘못이라고 한 적 없는데?
그녀가 나에게 벽을 치는 말투로 말했다. 나갈 때 분명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래서 눈 뜨고 있던 아이들 모두 나 때문이라고 느끼게 만들었으면서. 어이가 없었으나 그럼 누구 때문이냐고, 제가 그 친구를 불러다 드리면 되냐고 물었다.
-됐고. 나가, 너랑 말 섞기 싫어.
저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연인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을 섞기 싫다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왜 나한테 밀당하는 여자처럼 말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뭔가 지금 상황의 복선이 될 만한 사건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복도나 교무실에서 마주치면 인사한 것 말고는 내 기억에 서로 어떠한 대화도 나눈 적도 없었다. 선생님과 나는 데면데면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그런 관계였다.
어쨌든, 내 소중한 쉬는 시간에 물리실까지 찾아온 만큼 다시 우리 반에 수업을 하러 들어오겠다는, 선생님의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답변이 필요했다. 그래야 친구들 마음이 놓일 것 아닌가. 공부를 하든 말든.
-저희 반 수업에 들어오신다고 하면 나가드릴게요.
-... 넌 진짜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 안 나가?
-...바로 조금 전에, 교실 안 들어오겠다는 이유가 제 잘못이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녀가 나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물리 책을 던졌다. 그 와중에 운동신경이 좋아서 그걸 또 피했다.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이 김주원 어머니가 뿌린 물잔 피하듯이. 책이 내 몸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고 문에 부딪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아마 선생님 입장에선 내가 잘 피한 것도 기분 나빴을 것이다. 분위기로 보아, 뭘 더 던질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나도 누가 나한테 물건 던지는 걸 보고 나니 기분이 나빠서, 긍정적인 대답이고 뭐고 그럼 전 제 잘못 없는 걸로 알고 친구들한테 그렇게 전하러 가보겠다고 하고 나왔다.
나한테는 이렇게 별다른 이유 없이 심술을 부리던 이 선생님이, 자기 반 학생이 교복을 다시 맞춰야 하는데 그 금액이 너무 비싸서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하자, 자기 사비로 그 학생에게 교복을 사준 일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녀로부터 교복을 선물 받은 당사자가 내 오랜 친구여서 듣게 되었고, 그 아이가 부끄러울까 봐, 몰래 사주었다고 한다.
같은 학벌 같아 보일지 몰라도 막상 나가보면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과 고등학교 졸업장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은 분명 다를 거라고 하면서.
이 친구에게는 다정한 선생님이었던 그녀가 날 싫어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사실은 궁금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녀가 자상하고 착한 선생님이었는지, 감정 기복 심하고 자기의 감정을 설명해주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월급쟁이 공무원이었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아마도, 그녀의 멀티 페르소나겠지, 두 모습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