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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년 새해에는, 직장을 나오고, 이제 시나리오 작가라는 꿈도 때려치워야지 하는 결심 같은 게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브런치를 28개쯤 썼을 무렵, 마음속에 있었던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다 한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써도 되나? 싶은 내용도 있었지만 딱히 거르지 않았다. 누굴 비난한 내용이 아니라, 단지 내 약점을 드러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 비난을 받을 내용일지도 몰라, 욕할지도 몰라, 이런 글은 온라인에 쓰면 안 될지도 몰라, 했던 시간이 조금은 우스울 만큼. 그래서 안도했다.
나 혼자 전전긍긍했지, 생각보다 별 거 아닌 생각이었구나 싶어서.
마음속 이야기를 다 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이후로도 출퇴근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꼬박꼬박 글을 썼다. 지하철 밖 한강을 보면서. 가끔은 썼던 글을 회사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쳤다.
예전에 직장 생활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때 그렇게 썼었다. 출퇴근하는 시간에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휴대폰에 플롯 메모를 하고, 회사에서 틈틈이 수정하고, 집에 오면 다시 그걸 토대로 미친 듯이 썼던 습관. 브런치에 작가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면서도 그 습관대로 썼다.
가까운 지인이 10년 가까이하던 직장인 생활을 접고, 작년에 팟캐스트 메인작가로 활동하다가 올해 초에 웹드라마 작품을 단독으로 쓰게 되었다. 한 우물을 파니 되긴 되는구나, 싶어 그 얘기를 듣고 반나절 가량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만나서 깊게 상황을 알고 보니, ‘그 바닥 시세’라는 게 있는데 그에 한참 못 미치는 후려쳐진 금액으로 계약했다고 한다. 이제 끝날 때쯤 되었는데 다음 드라마 때도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면서 좋은 기획과 초반 4회 시놉만 괜찮게 뽑아오면 종편 방송까지 작업할 수 있을 거라고 꼭 같이 하자는 허황된 약속을 하더란다. 믿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하고 싶고, 다른 일이 아니라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고 싶고, 그걸로 커리어를 갖고 싶어서 썼지만 다음 계약에도 후려치기 당하는 금액이라면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럼 또 그들은 데뷔하고 싶은 신입을 어떻게든 구해서 계약금 후려쳐서 시킬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직도 꿈을 꾸는 지인이 대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글 쓰는 삶이 얼마나 불규칙적인 수입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불안함을 아는 나는 글로 밥을 벌 생각을 1년 전에 접었고 후회는 없다. 내 글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화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에 내가 쓰고 싶은 걸 내 속도로 쓰는 것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그냥 지금 이대로도 좋다. 그냥 느긋하게, 쓰고 싶은 만큼 쓰는 것도 좋은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