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랑
작년 12월에 방송한 ‘방구석 1열' 85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집 방송이었다.
그가 이제 막 깨달았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계속 가족 영화를 만들어 온 거 같네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걸어도 걸어도 각본을 썼는데 그 작품(걸어도 걸어도)은 제 어머니를 모델로 쓴 것이었어요. 비좁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여도 자신에게 절실한 모티브를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가족 이야기도)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출처: JTBC <방구석 1열>
그리고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아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것 하나를 깨달았다.
몇 년 전, 누가 나에게 사귀자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딱히 연애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연애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사귀자고 하는 그의 외모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거절했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네가 날 잘 몰라서 그러는데 자신이 참 괜찮은 남자’ 임을 아주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서 여러 번 거절했음에도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길래 결국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말한 것만큼 괜찮지가 않은 것이다.
돈 버는 것도 나랑 거의 같았고,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외모는 내가 그보다 훨씬 낫고 게다가 그의 외모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정 형편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있는 나와는 달리 부모님이 안 계셔서 키워주신 친척 어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버는 게 빤한 그가 실질적인 가장인 것까지, 모든 면에서 그보다는 내가 훨씬 나았다.
연애를 할 때, 나는 나의 장단점과 상대방의 장단점을 어느 정도 파악해두는 편인데 이 연애에서 나의 장점은 그보다 나은 외모였다. 나의 단점은, 누군가에게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의 장점은 그가 나를 배려하려고 한다는 것, 그의 단점은 그의 외모였다.
하지만 막상 사귀다 보니 이 다정한 관계가 주는 만족도가 꽤 커지면서 어느덧 나도 그를 배려하기 시작했고, 그도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할 줄 몰랐다고 스스로도 언급할 정도로 그가 하는 것 이상으로 상당히 많이 배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장점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존재가 당연해졌고, 어느새 나를 배려하지 않기 시작했다. 한 가지 장점이 사라지면 한 가지 단점이었던 것이 좋아지면 좋으련만 그의 단점이었던 그의 외모는 나아지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나의 장점은 그대로인데, 나의 단점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러자 나는 점점 나의 다정함과 배려가 아까워졌다. 그렇게 그가 내 다정함과 배려를 섭취하며 연애하는 동안, 나는 내가 베푼 다정함과 배려를 갈취당한다는 걸 알면서, 그래서 억울해하면서도 연애를 이어갔다. 언젠가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길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성향의 인간이 아니었다. 사실은 지금 이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일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되돌아오긴 뭘 되돌아와, 이 사람은 지금 모습이 실제 모습이야, 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럼 헤어져야 하는데 나는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가 변하길 바라고 있었다.
사실은 지금 모습이 원래 그의 모습이라는 걸 이미 아는데도 우리의 사이가 다시 애틋하고 다정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답지 않게.
결국 가깝지는 않지만 평소 존경하는 직장 선배한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내가 어리고 이기적이라서 그 남자를 진심으로는 안 사랑해서 그럴 확률이 높다고 대답했다. 니가 더 사랑해보라고, 니가 더 노력하면 바뀔 거라고.
존경하는 사람 말이라고 다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내가 그렇게까지 더 노력하고, 내가 그렇게까지 더 사랑해서까지 갖고 싶은 남자도 아니었기에 헤어졌다.
이 사람과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세상은 거지 같아도 함께 있는 동안은 행복해지는 것, 그거 하나 하자고 하는 것이 연애인데, 고통을 참아가면서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헤어지고 나서 공허하고 무기력함이 찾아와서 힘들었다. 딱 한 달 힘들고 나자 일상을 되찾았다.
그리고 일상을 되찾고 나자 의문이 들었다. 그를 왜 그렇게 오래 만났는지. 처음에 별로라고 생각하던 그였는데 헤어질 결심을 하는데 3개월이 넘게 고민했는지. 그의 배려가 사라지고도 왜 나의 배려와 다정함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는지.
1년 정도 만나고 있을 때 이미 그의 다정함은 많이 사라졌었다. 그제야 나는 그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해서 한참 그에게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헤어지기 5개월 전. 그가 현재 직장을 조만간 그만두고 이직을 하겠다고 하고나서부터 다정함은 그렇다 치고, 배려심까지 없어지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동굴 타임을 갖는 횟수는 잦아졌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에게 소리를 지른 적도 한번 있었다. 비록 몇 시간 안에 찾아와서 자신이 이직을 해야 해서 지금 마음이 불안정하네 마네, 다시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네 해서 사과를 해서 넘어갔지만, 원래의 나라면 나는 그 사과를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의 나라면, 저 정도 상황이면 그냥 끝이었다.
변한 그를 느끼면서도 나는 참았고 3개월 이상을 노력했다. 평소의 나라면 다정함이 사라진 걸 깨달은 순간 바로 이별을 고했을 사람이었다. 아니면 소리를 질렀을 저 때라도.
헤어지는 순간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고, 내가 자신의 손을 놓을 줄은 몰랐다고.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을 듣는 순간 그와 연애하는 동안 나에게 충족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나에게 절실한 문제.
그 친구만큼 나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며’ 사귀자고 한 친구가 없었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나는 항상 절박했는데, 그와 나의 관계에서 그가 '나' 같았던 것이다.
독립하기 전, 같이 살고 있을 때 엄마는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TV를 보다가 나를 보며 '쟤는 왜 저렇게 숨 쉬는 것도 거슬릴까'라는 혼잣말을 하곤 했다.
넌 왜 매일 밥을 먹느냐는 말을 매일, 몇 주 동안이나 내게 묻던 적도 있었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내가 너를 때리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게 할 권리는 나에게 없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무 듣기 싫어서 울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그런 나를 이상하고 감정적이고 예민하다고 나무랐다.
그래서 내가 독립하고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처음으로 아플 때였다.
엄마는 내가 아플 때마다 말했다.
거실 서랍장에 의료보험증이랑 돈 있으니까 빨리 병원 가라고. 아파서 끙끙 거리는 소리 거슬린다고. 나는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투정을 부리며 같이 가달라고 했다.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쉽게 안 죽는다고. 그 정도로 아픈 걸로는 절대 안 죽는다고. 죽을 정도가 아니면 혼자 가야 하는 거라고. 그럼 나는 삐져서 안 가겠다고 했고 그렇게 혼자 방에서 아프고 말았다. 끙끙거리면서.
엄마는 끙끙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빨리 병원에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는 엄마가 같이 가주는 게 아니면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주 아프지는 않았지만 아프면 저 일은 반복되었다.
그런데 독립하고 처음으로 혼자 아픈 날, 나는 세상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 아픈데 눈치 안 봐도 되는 상황이 오는 날도 있구나. 이런 세상이 있구나. 끙끙거린다고 혼 안 나도 되는구나. 누가 옆에 있으면 같이 가달라고 결국은 말하고 말 텐데, 아예 그런 사람이 없으니 기대할 누군가가 없으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구나.
내가 자취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끔 묻고 했다. 혼자 살면, 아플 때 엄마 생각나서 되게 서럽지 않느냐고.
반대였다. 아플 때 엄마가 없다는 생각에 너무 평온했다. 아플 때 엄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픈 와중에도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다.
그때 알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과 내가 느끼는 세상은 아주 다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지금도 집에서 온전히 혼자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이, 다른 어떤 사실보다 제일 행복하다.
엄마의 고함 소리 없이 편안하게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보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가 아파도 엄마는 병원을 같이 안 가줄 텐데, 나는 고집 피우느라 또 혼자 끙끙거리고, 그래서 엄마의 고함소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은 이제 내 인생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말이다.
하지만 냉정한 엄마인 걸 알면서도 엄마의 사랑을 포기하기 싫었다. 고두심처럼 평범하고 순한 인상의 나의 엄마. 그 엄마의 사랑이 너무 갖고 싶었다. 가까운 친구 중에 어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한 친구는 가끔 엄마와 같이 산다는 자체만으로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가 있다고 해서 엄마의 사랑이 자동 옵션으로 베풀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에게 이런 나의 고통은 어리광일 수 있어서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엄마라는 존재에게서 사랑도 받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받고 싶었다. 그래서 나한테 절실한 관계를 바라던 그가 나도 모르게, 나 같아서 쉽게 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더 잘해드리면 변하시겠지. 내가 더 착한 딸이 되면 엄마도 나를 사랑해주겠지.
그를 만나는 동안 절실한 내가, 절실한 그의 마음을 받아주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를 만나면서 나는 엄마와 나의 관계에 대한 핑크빛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로였던 친구였지만 노력해서 내가 그를 받아주고 그렇게 막상 만나보니 행복해진 것처럼, 엄마도 지금은 나를 안 좋아하지만, 그의 노력에 나도 결국 진심으로 그에게 다정함과 사랑을 베풀어준 것처럼, 내가 노력하면 엄마도 나에게 다정함을 베풀어주고 사랑해주고 그렇게 그녀와 나의 관계도 다정하고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
다정한 엄마의 환상은 달콤하고 강렬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사귀려고 매달렸던 초기 그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사랑을 원하던, 절박하게 매달리는 내 모습을 느꼈기 때문에 '내 모습'을 가지고 있던 그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헤어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를 놓으면 내가 꿈꿨던 엄마와 나의 핑크빛 환상도 같이 놓아 버려야만 하니까.
언젠가는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로.
남들은 흔히 글감으로 몇십 개씩 쓰는 엄마의 사랑을 나도 받고 싶었다. 엄마의 사랑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공허하고 갖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나 싶어서.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이렇게 매 순간 노력해야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갖기 어려운 일인 것도 억울했다. 그렇게 억울한데 갖기 힘든데 포기가 안 되었다.
포기가 안 되는 자신만의 문제.
나한테는 엄마의 사랑이 그랬다.
그래도 정말 미친 듯이 노력했고, 절박하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가져질 줄 알았지만 내가 아무리 진심이어도 받아줄 마음이 없는,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받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마음의 허기가 가시질 않는 일이다. 그 허기는 계속 커졌고 노력하면 할수록 되돌아오는 것이 없기에 공허했다. 그래도,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드디어 엄마의 사랑을 얻는 날이 오면 그 허기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줄 알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날이 오면 사실은 나도 남들처럼 처음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고 살았던 척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겨우 그 사랑을 그만두었다. 마음이 편해졌고, 그제야 마음의 허기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