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해 시뮬레이션하지 않은 결과

괴물이 잘못일까, 만든 사람이 잘못일까

by 시은

얼마 전에 한 독서모임의 모임 책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었다.


독서모임은 모임 전에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한다. 질문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모임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질문들은 흐름이 끊어지는 일을 방지하고, 한정된 시간 내에 모임 책에 대한 몰입을 도와준다. 대답을 준비하려면 아무래도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만 읽을 때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기 때문에 사람들도 준비한 대답을 잘 표현하기 위해 이 시간에 집중해서 참여하게 하니까.


여러 질문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괴물이 악한 존재인가? 프랑켄슈타인이 악한 존재인가? 무엇 때문에 더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7명 중 5명이 괴물을 창조했으면서 방치하고 책임지지 않은 프랑켄슈타인이 더 악하다고 판단했고 2명은 어쨌든 살인을 저지른 괴물이 더 악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나는 결론보다 어떤 분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생명에 대해 시뮬레이션하지 않은 결과가 너무 가혹하네요. 이렇게까지 창조자를 괴롭히고 주변 사람을 살해하는 걸 보니 초반에 자신이 얼마나 선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했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했지만 별로 동정을 못 하겠어요.


생명에 대해 시뮬레이션하지 않은 결과. 프랑켄슈타인이 자연철학의 힘을 빌어 생명을 탄생시킨 것과 달리 여자들은 시체를 주워 모아 꿰매지 않아도, 자연철학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임신을 하면 생명을 탄생시켜버릴 가능성이 과학도들보다 높다.


시뮬레이션하지 않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혼전임신으로 결혼하게 된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부모님에게 계속된 결혼 압박을 받고 있던 상태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요식업계에서 직장인과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압박을 했다고 한다. 요식업도 분명한 하나의 직군이지만 '번듯한 회사’에 다녀야 '자리 잡은 사회인'이라는 부모님의 보수적인 태도에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녀 스스로는 그 일에 대해 아주 만족해했고, 오너로부터 인정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피임에 실패했다. 프랑켄 슈타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의도치 않게 생명 탄생에 성공해버린 셈이다.


내가 듣지 못한 어떤 치명적인 매력포인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전부터 그녀가 그 남자와 있었던 몇 가지 상황들을 말해준 것만 들었을 때, 그는 결코 결혼에 적합한 남자가 아니었다.


내가 건네들은 몇 가지 에피소드만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남자이고, 그건 이후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친구관계를 끊거나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등 친밀한 인간관계를 깨뜨려가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거의 안 변한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참고로 이거 하나만 빨리 깨달아도 솔직히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데 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는 아니라고, 빨리 헤어지라고 연락이 올 때마다 충고했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그녀가 잠시 통화 좀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설마 아니길 바랐으나 임신이라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디테일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임신 초기이니 수술받는 게 어떻겠냐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만, 내가 니 입장이면 무조건 수술을 받을 거라고 말했다.


그 임신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후회할 선택일 거라고. 만약에 원치 않는 임신(계획에 없던 임신도, 결국 시뮬레이션하지 않은 생명이다)으로 태어난다면,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아이가 나중에 원망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태어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절대 사랑을 주지 않았던 엄마가 지금도 용서가 잘 안 된다고 차라리 안 낳아줬으면 더 고마웠겠다, 안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20년이 넘게 했었다고. 지금은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나아졌지만 그게 또 완벽히 괜찮은 것도 아니라고.


무엇보다 포기가 잘 안 될 때는 그것만큼 비참한 게 없는 게 엄마와 자식 관계라고.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한 참고글

https://brunch.co.kr/@ddocbok2/162


https://brunch.co.kr/@ddocbok2/36



친구는 그래도 생명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뱃속에 든 아이의 아빠인 그를 믿어보기로 하고 남편에게 앞으로 이러이러한 것은 하고, 저러저러한 것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몇 가지 서약을 적은 알량한 각서를 믿고 결혼을 했다.


급하게 진행하느라,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없이, 서류상으로.


둘은 결국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다투기 시작했다. 친구는 갈라서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있었던 상황들을 설명했다.


연애 때보다, 더, 더, 더, 안 좋아져 있었다. 각서는 당연히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어쩜 그렇게 예상을 하나도 안 비켜가는지 모르겠다. 결혼이랄 것도 없는, 혼인신고 전에 쓴 저 알량한 각서 얘기도 나에게 해주었었다. 나는 그딴 각서 믿지 말라고 했으나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혹시 몰라 친구에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너한테 들은 갈등 내용을 소재로 글을 쓰게 되어도 괜찮겠냐는 허락을 받았었다. 글 쓰는 인간들이 다 그렇지, 고통은 고통이고, 글 쓸 거리 있으면 우선 쟁여는 두고 싶은 마음.


그런데, 막상 지금 그 이야기들을 쓰려고 보니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사실 흔한 소재다. 나이 압박에 등 떠밀리듯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남의 편이고, 시어머니는... 여기까지 하자.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비슷한 내용의 줄거리나 고민들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조금씩 상황과 배경이 다르고 디테일의 차이만 있을 뿐.


비록 그녀의 전남편 잘못의 덩어리가 더 크고 많은 게 사실이지만, 아주 아주 냉정하게 사실 관계를 하나하나, 싹 다 나열하고 짚어봤을 때 내 친구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별 것 아닌 이유로 예민하게 굴고 미친 행동을 한 것이라도 정의의 사도가 되기보다는 내 친구 편을 더 들어주고 싶다.


그녀가 자신의 미래를 시뮬레이션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행동일까.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괴물이 잘못인가. 프랑켄슈타인이 잘못인가.


시뮬레이션하지 못한 것까지는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다. 했어야 했고, 했어야 더 좋았을 테지만, 누락한 시뮬레이션까지는 잘못이 아니라고 쳐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생명을 만드는 것, 그 책임지지 않을 생명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 그 시작을 프랑켄슈타인이 했다. 게다가, 그는 괴물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고선 뒷감당을 하기 무서워서 도망갔다. 심지어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이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아서, 아직도 괴물은 ‘괴물’로 불린다. 그를 부를 수 있는, 다른 대명사가 없어서.



그 인생을 누가 책임지라고.



이건 아니지.





스무살 때, 이 이야기 속 친구와 내가 <싱글즈>를 보고 나서, 그녀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출처: 영화 <싱글즈>


-야, 이거 너무 명대사지 않냐?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마라. 체한다.


극 중 동미(엄정화)가 나난(장진영)에게 하는 대사이다.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해 줬던 만큼, 다른 애들은 몰라도 이 친구만큼은 진짜 남자를 고르고 골라서 똑 부러진 결혼을 할 줄 알았다.


하긴 그렇게 말한 동미도 자신의 남편이 아닐 남자의 아기를 임신했고 그 남자는 떠난다는 설정은 똑같구나.


다행히 그녀는 결혼 1년 만에 이혼했고, 그녀의 아기는 귀엽고 깜찍하게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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