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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l 13. 2019

이해를 하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

나는, 고등학생 때     


-너, 돈 좀 있니?      


라는 말이 삥 뜯는다는 건 줄 몰랐다.      


그래서

     

-넌 숨 쉬는 게, 참 사람 눈에 거슬리게 쉬어.     


라는, 스무 살 때 들은 저 말도, 듣는 순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알 만한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가끔 너무 괜찮은 추리소설을 읽으면 추천해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친구가 그런 책 이야기하기 좋은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추리소설 많이 읽은 나보다 범인도 훨씬 빨리 찾아냈다.      


-내가 숨을 거슬리게 쉰다는 게, 숨을 거칠게 쉰다는 뜻일까?     


친구는 내가 물은 질문에 대답 대신 갑자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그냥, 친한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는데, 그 사람 말로는 숨소리가 거칠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숨을 거칠게 쉬나 싶어서.     

-그러니까, 친한 사람 누구.     


우리는 추리소설을 보는 방식이 좀 달랐다.     

나는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이게 중요했다.

그 친구는 누가 범인이지? 이게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나는 누가 물은 게 왜 궁금한지 친구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데.

-그게 왜 안 중요하지? 어떻게 사람한테 숨을 거슬리게 쉰다고 말할 수가 있지?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우리 엄마였는데 절대로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면 안 될 거 같았다. 미처 잡아내지 못한 숨어있는 엄마 마음의 행간이 궁금해서, 친구의 도움을 빌리려고 한 건데 친구는 이유보다 그 사람에 집착했다.      


-친해? 계속 봐야 되는 사람이야?     


엄마를 친하다, 안 친하다로 분류가 가능한지 몰라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싸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만 엄마는 친하고 안 친하고, 로 정리되는 사이가 아니라 그냥 엄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도 없었다. 정확히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엄마라고 말해주기 싫었다. 계속 봐야 하는 사람인 건 당당하게 맞다고 할 수 있었지만.        


모로 봐도 저 질문은 빠져나갈 틈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잘 빠져나가면서도 엄마의 마음이 어떤 건지, 내가 어떻게 하면 될지 들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답은 엄마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쪽 친척언니인데 집도 가깝고, 친한 편이고 가까운 사이라서 계속 봐야 되는데, 니 생각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나를 좋게 봐줄 것 같겠냐고 물어보았다.      


친구가 코웃음을 쳤다.      


-미쳤어? 너한테 숨 쉬는 게 거슬린다고 하는 사람한테 니가 잘 보일 노력을 왜 해? 

미친년이네. 어디 사는데? 내가 가서 머리끄댕이를 잡아준다. 친척 언니 나이 많아?     


몰랐는데 친구가 일을 크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성격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도대체 이 친구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비록 엄마라고 말하지 않긴 했지만, 지금 우리 엄마보고 미친년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를 욕하다니. 상종 못 하겠네.     


-니가 미쳤네. 알지도 못하고 본적도 없으면서 누구보고 미친년이래. 웃기는 애네, 니가 미쳤네, 진짜.     


나는 화를 내며 일어섰다. 입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친척언니라고 말을 했는데 남의 친척언니 머리채 잡을 생각을 하다니 가정교육 못받았네, 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손목을 잡았다.     


-야, 너 바보냐? 정신 차려. 그 사람은 너 엄청 싫어해. 니가 뭘 어떻게 해도 그 사람 너 안 좋아해. 나한테 말 못하겠으면 너 꼭, 너희 엄마한테는 말해. 너희 엄마, 니가 누구한테 그런 소리 듣고 사는 거 알면, 그 여자 머리끄댕이 안 잡을 수가 없을 거니까.      


그 말에 대한 이야기가 그 날로 끝나면 좋았을 텐데 친구는 그날 이후 계속해서 그 친척언니랑 인연 끊은 거 맞냐고 물어봤다. 엄마한테는 말했냐고도 계속 체크했다.      


당연히 엄마한테도 말 안 했고, 그런 말을 한 언니가 없었으니 인연을 끊을 친척언니도 없었다. 나는 나중에 할 거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대답하며 그 대화를 피했다.     


그 친구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그 친구도 나도 파악하지 못한 그 말의 다른 행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나를 볼 때마다 그 말을 한 언니와 반드시 인연을 끊으라고 말했다. 처음엔 계속 미친년이라고 부르다가 내가 불같이 화를 내자, 그 다음부터, 그 여자랑 인연 끊었어? 라며, 그 여자, 라고 불렀다. 친구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나와 엄마 사이가 진짜 끊어내야 하는 사이 같아서 불편했다.

      

친구가 엄마를 지칭하는 단어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설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여자, 로 지칭하는 것은 더 듣기 싫었다. 사실, 우리 엄마라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데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말할 수 없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반복이었다.     


-야, 그 얘기 이제 그만해.

-그 여자랑 인연 끊었어, 안 끊었어. 그것부터 말해. 

-니가 무슨 상관인데.

-야.

-그냥, 너랑 인연을 끊을게. 다시는 아는 척 하지 마라, 진짜.      


결국 내가 먼저 손을 들고 말았다. 처음부터 물어보지 말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 될 놈이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엄마의 저 말이 번개에 맞은 듯 갑자기 확 이해가 되는 날이 찾아왔다. 그 일이 있은 지 10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내가 했던 말들을 곱씹고, 그가 했던 말들을 곱씹는 시간들이 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뭘 하든 그 생각만 했다. 정확히는 그 생각만 났다. 


그러다 내가 그에게 했던 말 중에 나는 오빠 숨 쉬는 것만 봐도 좋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 누군가 숨 쉬는 것만 보아도 행복하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 덕분에 처음 알았다. 알고 보면 상 쓰레기 같은 놈이었는데. 


엄마가 나에게 숨쉬는 게 거슬린다는 말을 했다는 걸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숨쉬는 것만 보아도 행복해하던 기분을 생각하다가, 그런 마음의 정반대가,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밤마다 그와 엄마의 미친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걸레 같은 X.     

이라고 쓰인 노란 화면 속 그의 카카오톡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카카오톡 글자체 진짜 귀여운 거 쓰고 있었는데.      


에이, 난 걸레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하고 몸을 뒤집어서 잠을 청하려고 하면,     


-쟤는 숨 쉬는 것도 참 거슬리게 쉬는구나...     


하고 나와 있을 때 중얼거렸던 엄마의 혼잣말이 생각났다.     


스무살에 들은 얘기를, 스물아홉살에, 그것도 쓰레기 같은 놈을 사랑한 덕분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일이라도 해야 해서 바빴으면 미처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사랑했던 그와 데이트 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빌린 돈이 거의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때 절교한 친구한테도 돈 빌려달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창피한 게 없긴 없었던 때였다. 그 와중에 친구 역시 많은 걸 묻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그리고 이해를 못 했을 땐 상관이 없었는데 이해가 되어버리자 그 말이 계속 떠오르며 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고시원에서는 글을 잘 안 썼는데, 저 두 말들이 번갈아 떠오르거나, 동시에 떠올라서 잊으려고 미친 듯이 글을 썼었다. 그러다 보면 새벽이 오곤 했다.      


아픈 곳도 없는데 자려고만 하면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잠이 정말 너무, 안 왔다. 


이제 괜찮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살 때가 좀 더 행복했던 것 같긴 하다. 이해하고 나자, 이해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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