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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l 13. 2019

알고 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엄마가 왜 내 숨쉬는 모습을 거슬려했는지 그 마음을 구석구석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노는 게 이렇게 유익하다에서 말한 것처럼 중학생 때 성추행을 당하고 나서, 그리고도 나는 죽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성추행을 당했을 때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 놓기로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일이 2월 16일인데 그숫자의 반인 108개의 방법을 준비해 두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다양한 상황에 맞는 갖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작은 노트를 마련해 꼼꼼하게, 틈틈히 그 방법들을 적었다. 수업시간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필기인 척 적었다. 변명 같지만 그래서 더 공부를 못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108개가 쉽지 않아서 한 65개쯤 적었을 때, 도저히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유치했고 도저히 생각이 안 나면 거의 비슷한 방법을 살짝 바꿔 갯수를 늘리기도 했다. 


이런 식이다. 후춧가루를 들고 다니다가 눈에 뿌린다는 방법을 생각하고 나서 더 써야 되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면 후춧가루를 뿌리고 나서 근처에 있는 모래를 쥐어 뿌린다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때 가서 모래가 있을지는 알 수 없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85개까지 적었다. 내가 85년생이라서 괜히 그 숫자를 맞추고 싶었다.  그 중엔 만들기도 힘든, 새총으로 맞추고 도망간다는 방법도 있었다. 유리구슬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쫓아오면 뿌려서 그걸 밟고 넘어지게 한다도 있었다. 이건 <나홀로 집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조잡한, 말도 안 되는 85개의 대안이었는데 그때는 그걸 마련하고 나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대안을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 버렸다. 짜증이 말도 못하게 많아졌다. 짜증을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심하게 짜증을 냈고 울 일이 아닌데도 갑자기 울고는 했다. 나조차 그렇게 짜증을 내고 화내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도저히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엄마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부담스럽고 무서우셨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일 텐데 나도 내 인생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밖에서 맹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나는 내 감정조절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마와 싸우고 나면 나는 내 방문을 걸어 잠갔다. 

문을 두드리면 나는 문을 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방에 들어오지 마.

-문 열어.     


열기 싫지만 결국엔 열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잠그고 방에서만 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당장 열기는 싫었다. 하지만 매번 열어야 했고 열었다. 


싸울 때면 그런 식으로 지냈다. 중학생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화나면 미친듯이 화를 내고, 울고 싶으면 그만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1시간을 넘게 펑펑 울었다. 어느날, 싸우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다가 엄마의 잔소리에 문을 열자 엄마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니 방 아니고, 내 집이야. 그럴 바엔 내 집에서 나가.     


욱하는 성격의 고등학생이라면 져주지 않는 엄마와 다투다가 확 나가버리는 것 같기도 하던데, 나는 솔직히 갈 데가 없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나가서 또 무서운 일을 당할까봐 무서웠다. 


그 얘기를 할 수도 없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던 나는 엄마가 한 말에서 허점을 찾으려고 생각을 하며 내 방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뭘 그렇게 가만히 있어? 

-이거 엄마 집 아니잖아. 아빠 집이야.     


나는 돈을 버는 것이 아빠였으므로 아빠 돈으로 산 집이고, 그러니 당연히 아빠 명의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 월급을 모은 돈으로 산 것이겠지만, 엄마의 수고를 알고 있던 아빠가 엄마 명의로 해놓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아마 그 부분도 어쩌면 엄마에겐 재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이야, 그렇게 세상 똑똑한 척을 하더니, 몰랐니? 야. 이거 내 집이야. 등기부 등본 안 떼봤니? 떼봐. 이거 누구 집인지.      

-누가 고등학생한테 등기부등본을 떼줘!

-떼주는지 안 떼주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잘났으면 어떻게든 떼서 확인해 봐. 


나는 졌지만 안 진 척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차마 잠그지는 못했다. 나가라고 할까 봐. 승리자인 엄마는 나에게 앞으로도 말 안 들을 거면 그냥 나가 버리라고. 나가서 살 수 있으면 살라고 내 등 뒤로 말씀하셨다. 참아야 돼. 


최근에 안 사실인데 공인인증서와 회원가입도 필요없이 인터넷 등기소로 고등학생도 등기부등본 뗄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때 일이 튀어나올까봐 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말하고 말았다.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엄마는 계속 나보고 나가래? 열일곱살 밖에 안된 여자애한테 바깥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야, 니가 그런 일 당할 정도로 예쁘다고 생각하니? 정신차려.     


나는 안 예뻐도 성추행 같은 건 당할 수 있다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하지만 또 자세히 말하려고 하면 죽고 싶을 것 같은 기분이 들까봐 자세히 말하지는 못했다. 


요즘도 엄마가 대화 도중에 야, 라고 부를 때면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이게 뭐라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듣고 싶은데 야라고 하지 말고 이름 불러달라고 부탁하면 엄마는 왜 그러냐는듯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너랑 나 둘 밖에 없는데 야, 라고 불러도 너 밖에 없는 거 모르니? 너 어디 모자라니? 내가 왜 이름까지 불러줘야 하니. 


아마 엄마도 그때의 나에게 상처를 받아서 지금껏 이러신다는 걸 안다. 그래도 슬프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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