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할 것인가, STOP할 것인가
작가를 꿈꾸기 전, 어릴 적 나의 장래희망은 타짜였다.
여차저차 해서 결국 나는 타짜가 되지 못했다. 손톱만한 재능은 있는 것 같았는데 재능이 어느 정도 익기도 전에 너무 빨리 꿈에 대한 애정을 들키는 바람에 내 꿈을 알게 된 이버지의 거센 반발로 가슴 쓰리지만 노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손으로 하는 일들을, 왠만큼은 하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잘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노력을 했더라도 어느 순간 재능미달로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래희망인 걸 스스로 깨닫는 날이 왔을 수도 있는데 누군가의 반대로 그때는 그 뜨거운 첫 꿈을 접어야만 하는 게 서러워서 몇날 며칠 울었다.
상세한 사연은 이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ddocbok2/10
https://brunch.co.kr/@ddocbok2/11
그리고 그 이후에 갖게 된 꿈인 작가도 되지 못했다. 이건 그래도 어쨌든 이 꿈을 가지게 된 11살 이후 24년 가까이 꽤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지 못 했다.
그 사연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docbok2/1
https://brunch.co.kr/@ddocbok2/3
11살 때부터 갖고 있던 꿈을 향해,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고 알량한 140만원 정도의 돈만 가지고 7년 전, 29살에 서울로 온 것은 내 인생에 GO 였다.
자기변호이지만 변명으로도 분류될 수 있을 것 같은 말을 좀 하자면 증명할 길은 없지만 나는 내가 정말 소름끼치게 재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다른 재능들과 이리저리 재보고, 내 시나리오의 컨셉과 쓰는 능력을 냉정하게 저울질해봤을 때, 글에 대한 감각과 왠만한 재능, 그 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왠만한 재능보다 사실 글에 대한 어마어마한 애정도 있었다.
막연한 생각만으로 정말 너무너무 재능이 없었다면 서울까지 올라올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물론 왠만한 재능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애정이 서울에 올라오게 만든 원동력이긴 했다. 서울에 올라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뜨거운 마음이 꿈을 이루도록 해주고 싶었다.
너끈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왠만한 재능이었으므로. 세상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왠만한 재능으로 싸워볼 만한 것 같았다. 스폰서도 있다면 있었다. 내 왠만한 재능의 스폰서, 그건 내 마음이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랗고 어마어마한 글에 대한 사랑.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왠만한 재능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내 왠만한 재능을 커버하기 위해 잠을 쪼개가며, 미친 듯이 썼고, 사실 남들은 죽도록 싫어한다는 퇴고도 엄청 많이 했다. 처음엔 퇴고가 지겨워서 글을 쓰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진짜 ‘퇴고하기 싫어서 죽어버리고 싶다.’ 라고 아무 노트나 연습장에 시도때도 없이 끄적거리고, 휘갈기고, 글을 쓰다가도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중얼중얼 퇴고하기 싫다, 퇴고하기 싫어 중얼거리고, 매주, 혹은 격주로 글 쓰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저녁을 먹으러 가서는, 퇴고하기 싫다고 다같이 술 마시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짜증을 서로에게 부려대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나는 퇴고가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즐거웠다. 퇴고도 달리기와 비슷한 것인지 퇴고의 러너스 하이 같은 게 느껴지면서 어느 시점부터는 퇴고가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퇴고한 횟수는 아니지만 300번 가까이 퇴고한 시나리오도 있다. 퇴고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면서 하고, 그걸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면 나는 이것만큼은 천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정말 세상을 아주 씹어먹을 재능까지는 가지지 못한 것도 있고 그 직업을 가질 인연이 나에게 닿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너무 오래 달린 것 같았고 이젠 데드 포인트가 온 것 같았다. 노력하면 할수록 앞이 캄캄한 기분이 계속 드는 것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 끝이 안 보이는 노력을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영원할 스폰서일 것 같던 글에 대한 애정은 어느 새 사라져있었던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더 써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대로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버티는 것. 계속 시도해 보는 것을 하는 것.
평일엔 회사원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시간을 쪼개가며 주말엔 글만 쓰는 이중생활을 하며 시나리오를 계속 써보려고 하는 것. 배운 게 아까우니까, 공부한 게 아까우니까 하면서 쓰고 또 쓰고 하는 것.
내가 이런 마음을 글 쓰는 지인에게 털어놓았을 때,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여기서 그만두지는 말라고 했다. 아예 접지는 말고 상황이 좀 더 좋아지면 또 새로운 스토리로 써보는 것은 어떠냐고.
그녀의 말대로 살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완성된 시나리오가 잘 안 되면 다른 시나리오를 쓰고 쓰고 또 써서 그렇게 마흔이 넘어, 아니면 쉰 혹은 환갑이 되서 데뷔를 할 수도 있겠지.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박완서 작가도 마흔에 데뷔했다. 그리고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일 것이다, 대표작일 것이다, 라는 평론가들의 비아냥에도 왕성한 활동을 했고, 별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작가로 남아있다.
모든 재능들이 그렇지만, 글 쓰는 것도 그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면 매일 써야 한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악기를 매일 연주하지 않고, 연습량을 줄이면 아무리 잘하던 사람도 음악이 조금씩 후져지듯이, 글도 가닥잡힌 하나의 이야기를 계속 매일 쓰고 다듬지 않으면 글의 긴장감이 조금씩 무뎌지고 후져진다. 글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매일 써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여기, 직장인으로 살기로 했다. 그렇게 35살에 꿈에 대한 노력을 그만하기로 한 것, STOP 이었다.
GO와 STOP.
꿈을 갖는 것과 포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는 모든 것들이 화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졸업까지는 할까, 그만둘까 고민하는 것도.
회사를 계속 다닐까, 그만 둘까를 고민하는 것도.
어떤 연애를 계속 할까, 여기서 정리할까 결정하는 것도.
이혼을 할 것인가, 이 결혼을 유지할 것인가.
이런 것들도 결국 GO와 STOP의 문제다.
매번 GO 만 할 수도 없고 매일 STOP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GO 해야 할 때와 STOP 해야 할 때가 있다.
내 인생 한번 뿐이니 다 걸고 덤벼본다는 마음으로 GO할 수도 있고,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 지금까지 노력해서 가진 것들, 비록 대단하진 않더라도 그걸 지키기 위해 STOP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내 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STOP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었다. 꿈에 대한 노력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생각해보니, 재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 꿈을 향해 좀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이 방향에 대한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에 STOP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스톱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게 사람에 대한 사랑은 아니지만 쓰고 보니 사랑으로 귀결돼서 좀 어이가 없다.
무엇이 되었던 영원할 것 같던 뜨거운 마음이 평생 가지는 않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인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는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