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예술가들이 살아서 단 한번도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야 그 직업 뒤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시인 윤동주, 화가 반고흐, 시나리오작가 최고은.
세상은 그들을 인정하거나 알아볼 여유가 없었고, 그들의 생명은 세상이 알아봐줄 때까지 살만큼 질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자기가 가고자 했던 길을 걸었다.
나는 상업영화의 시나리오작가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 가슴 속, 뛰는지 마는지 몰랐던 심장의 멱살을 잡고 달리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이야기들은 진부하거나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뭔가 좀 더 제대로 된 디테일과 한방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건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왔다.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데는 별로 집요하지 않으면서 글이나 이야기를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천재가 아니어서 집요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배워서,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잘 썼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니 컨셉은 알겠어. 넌 무조건 영화로 만들어질 법
한 글을 쓰고 싶은 거라고, 컨셉이 너무 상업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알게 된, 같이 글 쓰던 친구들은 좀 더 완화된 표현으로 ‘너무’ 대중적으로만 쓰려고 하는 것 같다고, 그리고 인간들은 또 그와중에 너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성공하고 싶어서 서울에 올라온 거고, 난 팔리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요. 인물은 생생해야 좋은 거고. 고결하고 죽은 인간보단, 저열해도 살아있는 인간이 나으니까. 라는 류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서정적이거나 아름다운 대사는 못 쓴다. 내가 만든 인물들은 감각적이고 저열한 인간들이다. 저열한 인간들이 아름다운 대사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상업영화는 원래 훌륭한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다. 난 예술영화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예술가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적인, 처연하고 아름다운 느낌, 그렇게는 써지지 않았다. 쓰고 싶던 적도 없다.
나는 그렇게, 진심으로,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치정. 사기. 스릴러. 사이코패스. 그나마 멜로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이런 류의 장르 말이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만 작품을 완성하고 여기저기 내 본다면, 마음에 들어 할 제작사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업적 색만은 짙으니까 제작사만 잘 만나진다면,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원대한 헛바람이었다. 내가 만든 작품만은 상업영화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줄 알았는데, 오해였고 착각이었다. 난 내 작품으로 연락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데뷔조차 못 했다. 수없이 투고했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실패를 인정하는 길을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할만큼 했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어떤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이 삶을 구한다고 말했다. 상업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살기위해 고군분투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나의 글은 나를 구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끝까지 자기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는 예술가 감성은 아닌 것이다.
『연금술사』 속 주문처럼 한뼘만 더 파면 성공할 거라고, 너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현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