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줘서 고마워요
낳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 이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SKY 캐슬> 속 사교육에 미친 자신을 지적하는 이수임에게 날 선 대꾸를 하는 한서진의 대사가 사이다처럼 내 마음을 적셨다.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 그래야 내 딸들도 최소한 나만큼 살 수 있으니까.”
10대 초반, ‘친구들 다 가는 미술 학원’ 이 가고 싶어서 미술 학원을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미대를 갈 거냐면서, 미술은 집안 형편 좋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하면서 우리 집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을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동생과 나 몰래 우리 집에 빚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마트 가서 식료품을 구매하는 목록을 보면, 특별히 먹는 것을 줄인 것은 없었다. 1주일에 한번, 닭이 됐든, 돼지가 됐든 고기도 샀고, 쌀이 떨어진 적도 없고, 매주 장보는 비용이 8만 원에서 10만 원쯤 되었다.
학원비가 딱 그 금액이었다. 10만 원.
일주일 식비를 평균 금액인 9만 원이라 치고, 4주 기준 36만 원이 우리 식구의 식비라고 치면, 10만 원을 가지고 내가 먹을 걸 먹는 대신, 배우고 싶은 학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엄마가 여러 번 내 부탁을 거절하자, 나는 굶었다. 제발 그 돈으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계속해서 가정형편이 안 돼서 보내줄 수 없다는 엄마의 말에 그럼 나는 앞으로 1년간 저녁을 라면만 먹어도 되고, 아니면 한 끼를 굶어도 되니, 제발 3개월만이라도 보내달라고 ‘빌었다.’
굶은 지 3일 정도 되었을 때,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밥은 무조건 먹어야 돼. 굶든 말든 지금 네가 미술학원 안 다녀서, 니 인생이 망가진다고 해도 안 보내줄 거야.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먹어.
엄마는 '아빠가 돈을 더 잘 벌면' 이라던지, '지금은 상황이 안 좋지만 나중에 상황 봐서 보내주겠다'던지 하는 애매한 희망을 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으셨다. 굶는 나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저 말이 끝이었다.
더 이상 허기를 버티기 힘들어진 나는 다음 날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의 밥을 먹을 때마다 수치심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내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만 한다는 게. 내가 처음으로 내 의지로 배우고 싶었던 것에 대해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나의 몸’에게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인다는 게. 누군가는 유치하고 예민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좌절감, 패배감 같은 것도 이때 처음 들었다.
정말 여유가 없어서라는 이유가 컸다는 걸 알고 있다. IMF 직후였고 실직했던 아버지가 다시 직장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으셨을 때였다. 엄마가 정말로 내 인생이 망가지길 바란 것까지는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10대 초반, 성장기 아이에게 ‘배움’보다 ‘영양가 있는 식사’가 더 중요하다는 주부로서의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나는 그때, 그걸, 너무 배우고 싶었다. 절실하게.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미술에 관심이 생긴 것일 뿐, 큰 재능까지 있지는 않다는 걸. 그래서 미술 관련 업종으로 직업을 얻지는 못할 거라는 걸. 그래도 배우고 싶었다.
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배우고 싶었다는 거.’ 그러니 엄마의 선택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금액도 아니고, 길게 보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인생이 망가져도’ 학원을 보내줄 수 없다는 말은 상처가 되었다.
어찌 됐든 그 시기에 꼬박꼬박 잘 먹었기 때문에 항상 교실 앞자리에 앉아야만 했던 작은 키가 1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168cm까지 클 수 있었다. 내가 클 수 있게 된 것은 유전자 덕분도 있겠지만 한정된 자원을 영양가 있는 식사에 사용하기로 쓰기로 한 엄마의 효율적인 선택 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달에 10만 원짜리 학원을 3개월도 못 보낼 형편이라, 자녀의 마음에 상처 입히면서, 밥만 잘 먹여 키우는 게 좋은 양육인 걸까. 효율적인 선택, 그거 반드시 올바른 것일까.
엄마는 자신의 양육이 틀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내가 가끔 하는 투정을 들을 때면 내가 뭘 그렇게 너한테 잘못한 사람이냐고 말하시지만, 나는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그런 식으로 아이를 키워놓고 내가 아이를 ‘잘 키웠다’고 생각할 자신이 없었다.
내 생각이지만, 35세 넘으면, 부모님과의 갈등은 감정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 나이쯤이면 누군가의 딸이기만 한 신분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회사의 어엿한 직원이거나 어떤 것이든, 자기 밥벌이를 할 가능성이 많은 나이이며 사회적으로는 사는 지역의 시민, 구민이다. 이제 와서 엄마의 그 말을, 그 선택을 원망할 마음은 없다.
그리고 엄마를 원망하는 것보다 조금 비참해도 사랑하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비참해지고, 비참해도 사랑하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해놓고 사실은 엄마와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어렸을 때 공부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지 못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배워야 할 시기에 눈치 보느라 배우고 싶은 만큼 못 배웠다는 생각에, 낳아주셔서 감사한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태어났다는 사실이 좀 고되다.
<스카이 캐슬>에서 가난한 집의 딸이었던 ‘곽미향’이 ‘한서진’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의사 집안 남자와 결혼까지 해서 자기 딸만큼은, 물질적 걱정 하나도 없이 순수하게 원하는 만큼 ‘공부’ 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보며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잊을 수 없다. 원 없이 해보는 사교육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라니.
나도 ‘한서진’ 같은 엄마를 가져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부러웠다. 한없이 이 이기적인 딸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미안해하는 엄마라니.
정상적인 엄마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아니, 이건 ‘미친 엄마의 서사’ 다.
그 미친 엄마에게 열광한 시청률, 그게 우리 모두의 속마음 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욕을 하든 말든 저렇게까지 돈 걱정 없이 자식한테 사교육 해줘보고 싶다.
저렇게까지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님 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주머니에 넣어두자. 우린 옳음을 공부하려고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 취향, 높은 시청률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는 옳음을 보려고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한서진을 무시하는 시어머니조차도 사실은 판타지에나 존재하는 시어머니다.
그녀를 종 부리듯 부리고 무시하는 ‘더럽고 치사한’ 시어머니지만, 어쨌든 내 딸의 학업에 있어서만큼은 아파트 값 정도의 학비까지 지원 가능한 시어머니다. 이 정도 재산의 시어머니라면 성격 나쁜 시어머니라도 감당할 만하다. 현실 속 시어머니 중에 이 정도 물질적 서포트는 없이 더럽고 치사한 경우도 많다. 한서진의 시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는 0.001 % 도 안 된다.
현실 속 모든 시어머니들 중 좋은 시어머니들도 존재하시겠지만, 나쁜 시어머니들의 경우, 보통 물질적 지원은 없이, 더럽고 치사하기만 하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둘도 없이 자상했던 할머니가 엄마에겐 그런 시어머니였다.
사실 물질적인 것만 해결돼도 정말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혹은 참을 만해진다. 물질의 부족 때문에 마음의 평화가, 가족의 관계가, 금이 가고 깨어지기도 한다. 우리 집의 경우도 그러한 수많은 가정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는 심심치 않게 모진 엄마와의 관계에 어쩔 줄 몰라하는 딸들의 글들이 올라온다. 나이도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희한하게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들들의 글은 없다. 나보다 심한 경우도 많고, 나보다 덜한 경우도 있었다.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자 엄마가 도망갔다는 글들도 꽤 있었다.
그런 딸들의 글을 보고 있으면, 엄마라는 위치가 버거웠을 텐데도 도망가지 않고 길러주신 것은 감사하다. 어쨌든 나의 엄마는 도망가지 않고 엄마의 무게를 버티신 분이었다. 그러나 다시 나의 현실로 돌아오면 낳아주신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또 갈팡질팡하게 된다. 나는 선택 장애가 전혀 없는 과감한 성격인데, 이 문제에서만큼은 그게 안 된다.
나의 엄마가 특별히 모진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순전히 인터넷 게시판 글의 '양' 덕분이었다. 그곳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딸들이 엄마와의 갈등을 어쩌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냐는 글이 정말 ‘매일’ 올라온다.
익명의 그녀들의 이야기 데이터가 쌓이자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어쩔 줄 몰라하는 딸들이 이렇게나 많이 숨어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속 딸들은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기도 하고, 가난을, 불화 가득한 집을 벗어나기 위해 피 터지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시나리오 작가 되기에 실패해서 근근한 회사원인 나와는 다르게) 이제는 번듯한 전문직이기도 했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이제 한 가족을 구성해 엄마가 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나 사회경제적으로 어엿한 그녀들도 아직 엄마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나 같은 똑같은 딸이구나, 다들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 자기 몫의 일을 잘 해내고 있으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며 우리 모두 딸로 살아가고 있구나,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토록 많이 존재하는구나, 인터넷 속 익명 게시판 덕분에 알았다.
데이터가 더욱더 축적되자 알 수 있었다. 뭘 모르던 시절의 나는,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떠나버리지 않고, 매일 집에 존재하며,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잔소리를 하던 그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게, 살림이라는 게 굴러갔던 것이라는 것을. 나의 엄마는 특별히 나쁜 엄마도 특별히 좋은 엄마도 아니었다. 보통의 엄마였다.
이수임이 한서진에게 말한다.
-설사 지 아빠만큼 못 산다 해도 난 우리 우주가 행복하면 돼.
그녀가 자신의 도덕책을 다 읊자 한서진이 씹어 뱉듯이 말한다.
-쿨한 척 위선 떨지 마. 남편이 아무리 잘 나가도, 니가 아무리 성공해도 자식이 실패하면 그건 쪽박 인생이야. 너 한 번만 더 나대. 콱 죽여버릴 테니까.
엄마는 지금도 종종 결혼을 종용한다. 아이는 아예 안 낳을 거냐고 물으신다. 내가 지금 내 앞가림도 겨우 한다고 살짝 그 질문을 밀어내면, 네가 걱정이 너무 많다며, ‘낳으면 어떻게든 살아지고, 태어나면 어떻게든 다 자기 밥벌이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속으로 생각한다. 걱정이 많은 게 아니라 바로 그게 싫은 거예요, 엄마. 싸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 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