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할 것 같음 vs 진짜 착함

그 둘의 연관성 없음에 대하여

by 시은

오래전에 친구의 남자 친구, 혹은 그의 친구들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한 게 생각난다.


-너는 되게 착한 것 같아.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자신의 여자 친구와 비교해서 착하다는 뜻인지 그냥 착한 것 같다는 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20대 후반이 되기 전에 작가가 되고 싶었고, 가능하면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만 쓰느라 남자에 관심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성공하고 나서, 그때 가서 진짜 괜찮은 남자 한 명만 제대로 만나 결혼하면 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답답해하며 자신의 남자 친구나 지인에게 부탁해서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한 자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사실 원래 그런 자리에 마음에 들 만한 괜찮은 외모의 남자가 나오는 경우는 아시다시피 거의 없다.


지금은 이런 말을 하는 분위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괜찮은 외모의 여자가 혼자이면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


-너 같이 괜찮은 애가 왜 혼자야?


혼자인 게 더 편하고 좋고, 지금은 누굴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 놓치기 싫은 괜찮은 애를 소개해 주냐면, 그것도 아니다. 거저 줘도, 아니 돈을 얹어 줘도 안 가질 남자를 소개해준다는 게 문제다. 괜찮은 남자의 수는 매우 적고, 그러다 보니 자기 앞가림하기 바쁜 거, 이해한다. 간혹 내가 만나고 싶은 남자에게는 내가 안 괜찮고,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내가 안 괜찮았다.


그러니 분위기만 맞추다 갈 생각이니 나는 매 순간 조용하게 있었다. 마음이 글밭에 가 있기도 하고 나는 적당히 분위기만 맞추다가 집에 오곤 했다.


내 손가락으로 쓰기 그렇지만, 나는 입만 다물고 있으면 청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입이 좀 거친 편이라 친구들이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으라고, 그러면 인기 많을 텐데 왜 입을 열어서 분위기를 망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 친구들아,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싶어서 그렇게 했다. 인기를 얻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 모임 이후 왜 분위기를 망쳤냐는 잔소리를 듣기가 싫었다.





잔소리라는 건 아무리 흘려듣는다 쳐도, 싫은 일이다. 그리고 반대로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사실 눈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아이들이다. 정보가 중요한 시대에, 잘 듣는 능력이야말로 공부를 잘하고 못 가르는 걸 가르는 문제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잘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말을 잘하려고 할 때와 잘 들으려고 할 때의 뇌를 각각 촬영했는데 사실 말을 잘하려는 노력을 할 때보다,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할 때 3배의 에너지 소모가 든다고 한다. 듣는 게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역시 중요한 일에는 더 많은 자원이 든다.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도 마음에 안 드는 이성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런 중요한 일을 아무에게나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게 '일'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형성하지도 못할 일에 내 노력을 쏟기는 아까운 일이다. 집중해서 듣지는 않지만, 말이 끝나는 것 같으면 세 마디만 하게 되었다.


-아, 진짜?

-에이, 거짓말.

-그렇구나.


사실 이건 어떤 개그맨이 수다쟁이 친구에게 일일이 리액션해주기 힘들어서 이렇게 해주면 된다고 들었던 건데 나도 비슷한 용도로 쓰고 있다. 나이가 좀 많으면 존댓말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내 생각을 깊게 물어보는 일도 없고, 굳이 말하지도 않는다. 내 생각과 부딪치는 문제라고 해도 말이다. 그 외에는 가만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다.


그래서 내가 착하다고 말한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주변 친구들은, 평소에 침착하지만 짐작도 못한 상황에서 변덕이 심할 때가 있고 화나면 불 같고, 한 주제에 대한 갈등이 생기면, 친구와 연인을 불문하고 원만한 결론이 날 때까지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런 내 친구들을 보다가 친구들의 부탁대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보니 되게 착한 것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들은 안 착하게 굴었으면서 나보고 왜 착하게 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아, 남자 만나게 해 주려고 그런 거지.


내가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원래 친구는 나쁜 의미든, 좋은 의미든 끼리끼리다. 그런 친구들과 내가 잘 맞으니 내가 그녀의 친구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쟤, 되게 착할 것 같았는데 의외다.'라는 말이나 글을 볼 때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소리치고 싶다. '착할 것 같다, 착하게 생겼다' 등은 '진짜 착함'과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다고.


갭이 큰 정도가 아니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슷한 예로, '청순하게 생겼다'와 '진짜 청순함'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지와 실제 성격이 다른 사람에 대해 말을 할 때 '쟤, 되게 착할 것 같았는데 의외다.'라는 말 대신 어떻게 말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건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냉정하게 말해서, 20-30대 여자인데, 좀 여리여리한 체형에 화장 연하게 하고, 검은 (혹은 너무 밝거나 튀지 않는 색) 긴 생머리이면 웬만하면 다 청순해 보인다. 실제 성격과 상관없이.


나 역시 그 수혜자 기도 하다. 실제 성격과 상관없이. 내 성격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청순해본 적이 없지만 나와 친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나를 청순하게 봐주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청순하지 않다는 걸 아주 잘 안다.


나는 청순함과 더불어 '착하다'와도 거리가 멀다. 무례하거나 못됐지는 않게 살려고 하지만 나는 착하지 않다. 어느 자리에서 나를 착하게 본 사람들은 내가 일시적으로 '연출한 선함'을 본 것일 뿐이다. 가장된 모습의 일시적 선함.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직장인들 모두 사장님 및 대표님에게 매일 일정량의 일시적 선함을 선물해드리며 살지 않는가. 생긴 것만으로 모든 것을 쉽게, 좋은 쪽으로만 판단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강조하고 싶으니까 한 번 더 말하자면, 착하게 생긴 애가 왜 저래?라는 식의 말은 하지 말자. 아니 생각도 하지 말자. 쉽지 않지만, 판단을 유보하자.


'착할 것 같다, 착하게 생겼다' 등은 '진짜 착함'과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다.


'청순해 보인다'와 '실제 청순', 그 둘도 친구 사이가 아니다. 아니 생판 모르는 사이다.


그렇게 믿고 있던 이미지의 사람의 실제 모습이 다르면 내 속만 상한다. 배신감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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