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빈둥거리는 걸 참 좋아한다. 빈둥거린다는 말보다 멍하게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그 멍하게 있는 순간이 좋아서, 나는 작가가 되면 글 쓰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도, 돈이 없으면 ‘많은 시간’을 가진 행복이 아주 많이 퇴색된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시절, 방 보증금을 까먹으며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잘 될 거라는 근거는 없었다. 한국영화는 계속해서 불경기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고 넷플릭스의 시장만 커지고 있었다. 신입작가를 뽑을 한국 영화 시장은 작아지고 넷플릭스의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이야기나 신입 작가의 수요는 더 줄어들면서 기존 영화감독이나 관련 작가, 감독들이 그 쪽에서 수입을 얻게 되는 산업구조로 시장의 흐름이 재편되고, 더욱 그 시장이 커질 거라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똑똑히 인지하면서도 나는 잘 될 것 같았다. 내가 들어갈 시장이 혹독한 불경기여도, 다른 사람은 다 안 되더라도, 나는 잘 될 것 같았다. 희망인지 뭔지가 나를 속인 것일까?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을 속였다. 글쓰는 게 좋아서, 그래서 재미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행복했던 그 노력을 계속 하고 싶어서.
그 당시의 나는 허세까지 있는 편이라서 뭘 믿고 그랬는지 빚이 6000만 원까지 쌓일 때까지는 써보겠다, 그 전에는 반드시 잘 될 거야, 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또 (아직 생기지도 않은) 그 빚을 어떻게 갚을까 고민도 했다. 공모전이 돼서 갚으면 좋고 안 되면... 그냥 저 돈 갚느라 평생을 일의 노예로 살아야지, 보험은 몇 개 있으니 암이 걸려서 암 보험금으로 (생기지도 않은) 저 빚을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노후 계획을 무책임하나마 나름 차분히 세웠던 것 같다. 글 쓰는 걸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그 당시에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글 쓰는 삶을 선택하는 대신 결혼을 꿈꾸지 않게 된 게 컸다.
그렇게 살다가 빚이 쌓인 나를 누가 건사해주는 것이 싫었다. 생각해보면 김칫국이다. 누가 요즘 세상에 다른 사람 빚을 갚아주나. 어쨌든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누군가에게는 그런 가능성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 가능성이 생긴다 해도 그 가능성의 프레임에 나를 넣기는 싫었다.
내가 남의 빚을 갚아주기도 싫지만, 내 빚을 남이 갚아주는 것도 싫다. 내가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세상의 진리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게 내 생각이다. 내 빚을 누군가 대신 갚아주면, 얼마나 그 돈에 대해 유세를 하겠는가. 겪어보지 않았지만 겪기 싫었다.
1년 전쯤, 내가 감당하려 했던 빚의 1/3 쯤 왔을 때, 포기하기로 했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달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공부를 하느라 책 구입과 자료조사 등으로 조금씩 빚이 쌓이는 것이 걱정된 것도 있지만 그건 예전에도 있던 지출이었다. 그것보다는 남들이 지루하다고 하는 회사 생활이 나는 나쁘지 않았고 고정적인 수입으로 인해 처음으로 맛본 안정적인 생활이 행복했다. 글을 쓰며 알바만 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작가가 된다는 보장 없이 노력하는 삶의 루틴이 버거워졌다.
견딜 만한 지루함과
견딜 수 없는 지루함
어쩌면 작가가 될 때까지 버티는 사람들의 가장 큰 싸움은 두 가지 선택 싸움이다.
직장 생활이 나에겐 견딜만한 지루함이었고, 살다 보니 괜찮은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 혹은 고통이 된 상태였다.
직장 생활을 10년 가까이하다가 지금은 글만 쓰고 있는 지인들은 수입이 있든 없든, 모아둔 돈을 까먹으면서도 글만 쓰고 있다. 올인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직장생활의 판에 박힌 일이, 창작을 하는 일을 해보고 나니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 된 것이다.
어떤 지루함을 견디느냐, 그게 그녀들과 나의 경로를 갈랐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수준의 확률인 작가 데뷔.
그 데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겐 창작을 하는 노력이 견딜 만한 지루함인 것이다.
나에게는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