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기 위한 최고의 습관

그런 건 없어

by 시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작가들의 101가지 습관- 최고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글쓰기 비법 이라는 책이 있다. 2005년, 경당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다.



그 책에 보면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중요한 습관이 나온다. 작가들마다 자신의 그 습관이 성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습관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어떤 습관', 그게 그들을 만든 성공의 비밀 열쇠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의 충고는 한 개인이 절대로 100% 수용할 수 없다. 작가마다(정확히는 개인마다 라고 해야 옳겠지만) 다 자신에게 맞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예 정반대인 습관까지 있었다.




15년 전, 이 책이 막 출간되었을 때 바로 이 책을 접했었다.이제 막 20대가 되었고, 성공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나는 스위스로 여행 간다, 뭐 5성급 호텔에 처박혀서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쓰도록 한다, 이런 건 할 수가 없으니, 너무 큰돈 드는 것과 너무 위험한 것은 빼고 무조건 이 책의 말대로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책 1/3 쯤 읽었을 때, 이런 습관의 작가가 있었다.


A 작가는 자신이 비록 출근할 일은 없지만 자신은 직장인과 동일한 루틴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즉, 직장인처럼 9시까지 작업실에 가서, 12시~1시까지 글을 쓰다가 1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갖고, 6시가 되면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라도, 메모만 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집으로 온다고 한다. 몸이 아파도, 날씨가 안 좋아도 무조건 이렇게 한다고 했다. 직장인처럼.


나는 일찍 일어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쨌든 저렇게 했다. 학교의 방학시기였고, 나한테도 가능해서 나도 해볼 만한 습관인 듯했다. 작업실은 아니지만, 카페나 도서관에 9시에 가서, 12시까지 글을 쓰고 6시쯤 집으로 오는 생활.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잘 써지지고 않고 틀에 박히는 기분이지만 뭔가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다. '기분만 들었다.'

그런데 책을 2/3 좀 넘게 읽었을 때, B작가는 자신은 오전에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오후 1시쯤 남들이 점심을 먹을 때쯤 됐을 때 일어나서 2-3시쯤부터 글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밤 11시 12시까지 쓰기도 하고, 더 늦게까지 쓰기도 한다고 했다. 더 일어날 때도 있고, 늦게 일어난다고 늦게까지 쓰는 것도 아니지만, 잘 써지는 날은 일찍 일어나서 많이 썼다고 굳이 일찍 자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말 대립되는 습관이다. '규칙적인 A 작가'와 '자유로운 B 작가'의 생활습관을 동시에 가질 순 없다. 이렇게 써보려고 하면 단명한다.


나는 B 작가 습관이 더 좋았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이던 시절, 저렇게 했던 편이었다. 단, 써지든 안 써지든 '일주일에 24시간, 18페이지 이상 쓴다'라는 나만의 규칙을 추가로 정했다. 이 두 가지 옵션을 매번 지키지는 못했지만 거의 근사치로 지켜가며 썼고, 당연히 염두에 둔 시간과 양이 있으니 그것보다 더 쓰기도 했다. 당연히 덜 지킨 날도 있었지만.


하지만 만약, 이 책의 기획자가 운명의 장난처럼 B를 인터뷰할 생각을 못 했다면, 그리하여 A의 인터뷰만 실렸다면, 수많은 자유로운 작업 스타일을 선호하는 작가 지망생들을 조금은 낙담하게 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그런데 저 책을 읽었던 때로부터 15년이나 지나고 보니, 지금의 나는 B처럼 쓰고 싶지 않다.


이젠 저렇게 쓸 수도 없지만 직장인으로서의 다시 태어난 나는 생각보다 규칙적인 생활이 괜찮고 보람도 있다. 월급은 낮지만 야근 없고 규칙적인 생활이 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 주는 걸까? 남는 시간에 뭐라도 하고 있긴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라서 내가 하는 노력, 그게 미래에 어떤 그림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불확실성의 시대의 확실한 것은 이거 하나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나한테 진짜 찰떡같이 맞다고 생각한 습관도 변한다. 아, 이건 시대상이랑 상관없다. 그냥 습관이란 원래 그런 거다. 그리고 습관이라는 게 생각보다 영원하지는 않다는 걸 살아보니 알겠다.


게다가 최고의 습관, 이라는 게 있다 해도 그것이 애초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다만, 그때그때 어떤 습관을 가질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맞도록 적용시키는 것, 그게 아마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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