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예쁘게 하는 것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그게 또 전부는 아니더라.

by 시은

나는 서른을 넘게 되고부터 딱히 연애를 하고 누구를 만나 알콩달콩 하고 싶지가 않았다.


스물아홉, 데이트 폭력 직전까지 간 연애가 연달아 두 번 있었는데 그 이후 그냥 남자와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호감을 갖고 관계를 발전시키고 하는 과정들에 마음을 쏟는 게, 지겨워졌다.


그런 와중에 판단력은 흐려져서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아무나 그냥, 가볍게 만나다가 쉽게 헤어져버리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꼭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아니라도 내 눈에 보이게, 나로 인해 누구라도 상처 입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그들이 상처 입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마음은 심장에 폭풍우가 치는 것 같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마음이 잔잔해지길 기다렸어야 했는데, 그게 되질 않았다.




그렇게 아무나 만나고, 아무렇게나 사귀고 헤어지다 그 와중에도 꽤 끌리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금 어디서 누구와 사는지 얘기가 나왔다. 나는 부산에서 올라와 독립하고 자취를 한다는 얘기를 했고, 그 남자에게도 혼자 사는지 부모님과 사는지 묻게 되었다. 그는 할머니와 산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부모님이 자기가 스무 살 때 자신이 대학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다.


이런 무거운 말까지 듣게 될 줄은 몰라서 나는 멈칫했다.


설마 여자애 꼬시겠다고 부모님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텐데, 호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직 나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닌, 잘 모르는 남자에게 내가 위로를 해 줘야 하나 싶어서 우물쭈물거리자 그가 말했다.


-여자애들은 내가 부모님 돌아가셨다는 말만 하면 안쓰럽게 보거나 위로해주려고 하더라? 안 그래도 돼. 친구 놈들은 야 인마, 너 이제 고아 됐어,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이랬거든. 부모님 돌아가신 지 16년 됐어. 슬픈 감정? 없어. 뭐, 가끔 떠오르면 먹먹하긴 한데 그건 또 슬픈 거랑 다른 거고. 20살 때 나는 부모님 없다고 생각하니까, 원래는 대학 가면 펑펑 놀아야지 했는데 놀고 싶은 생각 하나도 안 들고 정신 번쩍 차리고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살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나한테는 잘 된 일이다 싶기도 한 게 부모님 맞벌이셨는데 두 분 정정했으면 그거 믿고 정신 못 차리고 맨날 술이나 먹고 놀다가 지금만큼 괜찮은 직장 못 구했을 거 같아서, 나는 내 인생만 놓고 봐서는 잘 된 것 같기도 해.


그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할머니는 건강하신지, 잘 지내시는지 물었다.


-우리 할머니, 정말 건강해. 그리고 너 욕 잘하잖아. 우리 할머니도 욕 잘하시거든. 너, 우리 할머니 성격이랑 완전 비슷해. 부모님 돌아가시고 한 3-4개월 됐나. 할머니가 나보고 왜 니 빨래 니가 안 하냐고 잔소리를 하시는 거야. 내가 그냥 이것저것 다 짜증 나고 심란해서 그냥 할머니가 좀 해주시면 안 되냐고 하니까, 그때부터 야 이 새끼야, 니 팔다리 멀쩡하고 니보다 가방끈 짧은 나도 세탁기 버튼 보고 다 할 수 있는데 왜 나를 시키냐고, 밥도 내가 하고 청소도 내가 하는데 빨래 정도는 네가 해야지, 사람을 어디까지 부릴 거냐고 매일 집안일 때문에 고함을 치시는 거야. 욕 계속 듣다가 경기 날 것 같아서 빨래하기 시작했다, 진짜. 언제부턴가 매일 설거지도 시키시고. 공부한다고 할머니가 하면 안 되냐고 하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병신 새끼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할머니를 부려먹을 수는 없다고 또 욕해. 보통 손자한테 ‘호로쌍놈의 새끼’란 말을 하는 할머니는 없을 것 같지 않냐? 우리 할머니는 안 그래. 화가 나시잖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 말해. 나, 엄마 아빠 죽은 거 불쌍하지 않느냐고 하면, 원래 자식보다 부모가 먼저 죽는 거라고, 근데 나는 지금 자식이 먼저 죽었다고, 엄살 피우지 말라고.

내가 앞에서 독립을 한 이유를 말하면서 부모님이랑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은 데에는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나에게는 시키면서 남동생에겐 전혀 안 시키는 게 너무 빡쳐서인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드리고, 그게 안 통하면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난리를 쳐도, 그런 구조를, 엄마의 남녀 차별 의식을 바꿀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함부로 나에게 집안일을 시킬 수 없는 환경을 내가 나에게 제공해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집안일 혼자만 한다고 지랄 난리 치는 여자, 그게 그의 할머니, 그리고 나였다.


나의 독립이 패배는 아니지만, 그의 할머니는 결국 싸우고 욕해서 한 사람을 바꿨다. 할머니, 좀 멋있으시네요.


그의 할머니도 멋있었지만 그녀가 키운 이 남자도 꽤 괜찮았던 것 같다. 나는 이 정도로 자기 연민이 없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여자들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부모님의 죽음을 신파로 풀지 않고 담담하게 말한 그의 태도 또한 매력적이었다.


가족 얘기 후에 돈 얘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 수입이 시원치 않은 걸 숨기지 않았다. 그가 나를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내가 돈 없는 건 둘째 치고, 누가 됐든 진지하게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가볍게 만나다가 여차하면 그냥 헤어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쉽게 헤어지는 만남을 많이 가졌던 이유는, 어쩌면 안전하게 헤어지는 연습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이고 싶다는 협박, 네가 사는 곳 근처에 불을 지르겠다던 말. 그 말들은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나를 죽이기 위해 노력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이후 그 생각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를 찾을 수 없도록 이사를 함으로써, 어느 정도 안전한 물리적 상황을 갖추고 나서도 나는 불안에 떨었다.


그 남자 친구가 살인까지 할 성격은 아니야, 자기 할 일 하는 것도 바쁠 텐데 내가 사는 곳을 찾아다니거나, 찾은 뒤 숨어서 나를 기다리거나 하며 시간 낭비할 성격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주변을 잘 살피며 다녀야 한다고 쉴 새 없이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 이후 모든 사람을 쉽게 만나고, 아주 쉽게 헤어졌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안전하게 헤어지는 상황을 계속 만들고 다시 빠져나오는 걸 반복해서 안전하게 느껴질 때까지 연습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느 날 사소하지 않은 문제로 그와 싸우다가 알게 되었다.


자신이라는 남자가 나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나의 관계에 대해 최소한 나보다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한, 이런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것.


나는 그때 작가가 되기 위해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정도로만 밥벌이를 하는 상황이었다. 글 쓸 시간 확보를 위해 아르바이트만 할 때이기도 했지만 그가 잘 버는 편이기도 했고 여하튼 그와 나의 소득은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는 그 부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아깝다는 생각을 수시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해한다.


나한테야 소중한 꿈이라서 이렇게 사는 거지만 남들 눈에 당연히 한심하게 보일 수 있다. 정말 뼛속까지 이해한다.


오빠 마음 알겠다고 말했다. 오빠 눈에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중요한 문제라고, 나는 결혼까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오빠도 그 부분이 크게 걸리지 않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결혼이 하고 싶은 거였던 것이라면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내 마음을 숨긴 적 없이 오픈했고, 별다른 갈등 없이 그 이후로 우리가 계속 만났으니 내가 원하는 ‘결혼 없을 우리 관계’를 오빠도 받아들인 줄 알았다고 말이다.


나는 정말 작가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자리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작정 결혼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이대로 쭉 만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내가 상대방보다 쳐지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언젠가 결혼을 하려고 할 거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제 계속 누굴 만나서 연애하기보다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대책 없이 살고 있는 나를 만나고 떠안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장난처럼, 하지만 자주 말했다.

-나한테 기댈 생각하지 마.

나도 말했다.

-기댈 생각 전혀 없어.


오히려, 결혼하면 일 그만두고 전업주부 시키려는 남자들보다, 결혼을 원하지 않아서 내가 내 앞가림하는 걸 막지 않을 것 같아서 ‘기대지 말라'는 말이 좋았다.

궁금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나를 만나기 전에 사귀던 여자 이야기가 나왔다. 전 여자 친구, 전전 여자 친구 모두 그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고. 허세도 있었겠지만, 그의 외모는 나쁘지 않았고 벌이도 나쁘지 않았으므로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를 만나기 전 여자들과 헤어진 이유 모두, 자신과 결혼을 원했고, 자신에게 기대려고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서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 같지 않아서 좋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내가 작가 하겠답시고 일단 당장은 너무 못 번다는 게 아마 그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꿈이었어도 그가 보기에 내가 글을 쓰고 작가가 돼서 돈을 벌겠다는 소리는 세상 뜬구름 잡는 정도로 들렸었을 것이다.


이성적인 성격 같은데,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직장은 다녀야 할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너무 세상을 안일하게 살고 있는 사람,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원하는 여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스타일인지 알 것 같았다. 키 크고 성격 시원시원하고 얼굴은 빼어나게 예쁘진 않지만 수수한 정도로는 예쁜 편이면서 그래도 자기 밥벌이해서 자기 가족 스스로 챙길 능력이 되는 여자.


그런 여자와 ‘결혼’이 하고 싶은 거였다.


그래, 그도 잴 건 재야겠지.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내 밥벌이만 겨우 하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그는 나와 계속 만나면 내 가족을 자신이 금전적으로 챙겨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생각 자체가 없다고 누차 말했지만 그는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게 아니겠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대로 가볍게 살고 싶었고, 그는 나를 제대로인 여자로 만들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서로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연락하지 말자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당연히 끝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정도 뒤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물었다.

-넌 나 안 보고 싶냐?

-오빠, 넌 나 보고 싶니?

-어. 보고 싶어.

-오빠, 아무리 술을 먹었고, 비록 한 글자 차이지만 말은 똑바로 하자.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겠지.


그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솔직하고 털털하면서 매력적인데 왜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꿈 따위를 꾸는 거냐고 작가 따위가 돈을 잘 버는 직업군도 아니고 그게 왜 되고 싶은 거냐고, 제대로 된 일을 구해서 살면 왜 안 되느냐고.


니가 나에게 기대지 않을 거라는 확신만 있으면 더 이상 누구 안 만나고 너랑 만나겠는데, 언젠가는 니가 자기한테 기댈 것 같다고 그래서 이러는 거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의 말도, 그의 마음도 다 이해가 갔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때의 나는 작가라는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대꾸도 하기 싫었다. 충분히 대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입장을 설명해주기도 지겨워서 몇 분 정도 더 넋두리를 들어주다가 끊었다. 나는 그의 돈을 보고 만난 게 아니었다. 얼굴 보고 만났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빈털터리가 돼서 나한테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좋은 여자 만나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또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아주 오래된 진부한 질문을 했다.

-너 벌써 누구랑 잤냐?

-솔직하게 말해도 돼? 자세히?


그가 잠시 침묵 후에 대답했다.

-... 아니, 안 돼.


이번엔 내가 한숨을 쉬었다.

-오빠랑 헤어지고 아직 아무도 안 만났는데 딱히 오빠 때문에 안 만난 거, 아니야. 그리고 막말로 이 전화 끊고 한 시간 뒤에 우연히 만난 남자한테 호감 생겨서, 오늘 밤 같이 있는다고 해도 오빠가 나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 아니지 않아? 반대로 오빠가 그런다고 해도 내가 뭐라고 할 입장 아닌 것처럼. 내 말 틀려?

-와... 너. 와... 너.


몇 번이고 와.. 너.. 를 반복하던 그가 이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좋겠다. 잘났다.


좋을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고 싶은 것뿐이었다. 내 인생의 액셀과 브레이크는,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밟고 싶은 거, 그게 다였다.




그 후, 한동안 나는 다른 조건 다 필요 없고 ‘말을 예쁘게 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하는 거 말고 예쁘게 말하는 게 듣고 싶었다. 무서운 말로 협박하던 남자도 최악이지만 정확한 말로 현실 자각 타임을 제공하는 남자도 나에게는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나에게 맞는 남자가 아니었다. 얼굴이라도 별로였으면 무시했을 텐데, 아니, 듣자마자 바로 흘렸을 텐데 잘생긴 남자가 한 말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무시가 안 되었다. 짜증 나게.


그가 말한 팩트들은 나를 심란하게 했다. 팩트에 입각한 불안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훨씬 더 커서 현실을 외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순간순간 현실과 내 별 볼 일 없는 상황이 끊임없이 자각됐고, 불안감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래도 계속 글을 썼지만.




몇 달 후, 나는 말을 정말 예쁘게 하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내 꿈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다. 글 쓰겠다고 돈도 제대로 벌지 않고 사는 나를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꿈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않느냐며 멋있다고 했다. 이게 딱히 멋있을 일은 아닌데,라고 대답하면서도 그와 대화하다 보면 안도감이 들었다.


일을 하지 않는 날, 나는 정오가 거의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오후에 연락을 하고 그가 뭐했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했다.


-먹고 글 쓰고 화장실 왔다 갔다 하고, 피곤하면 자고. 그게 다야. 맨날 똑같지 뭐.


그가 말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


가끔 글이 전혀 안 써지는 날도 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못 썼다고, 진짜 먹고 자고 싼 거 말고 한 일이 없다고 말하면 그래도 그는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매일매일 말해주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남들 다 돈 벌 시간에 나는 생산적인 일은 한 게 없다고 내가 먼저 말해도, 그는 비교하지 말라고, 너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네 할 일을 충분히 한 거라고 끊임없이 나를 다독였다.


나는 그의 따뜻한 말에 위로가 됐고, 팩트에 입각한 말들의 폭행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가 되었다.


좋은 콘셉트를 구상하며 이야기를 짜고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며 글 쓰느라 힘들면서도, 남들 돈 벌 때 사실은 내가 노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았었다. 이 친구 덕분에 아직 그게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게 아닌, 그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내 인생을 비난하거나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런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싶은 심리 상태도 벗어나서 이 친구와 2년을 만났다. 내 인생에서 1년을 넘긴 연애는 이 연애가 처음이었다.


이 남자 친구도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자신을 키운 상황에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통화하던 중 할머니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잠시 후에 다시 걸겠다고 했고 거의 1-2분 뒤 바로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었는지 물었다.


할머니가 장을 보고 와서 음식 손질 같은 걸 도와달라고 부르셔서 잠깐 갔다 왔다고 했다. 음식 손질이 1-2분 만에 끝날 리가 없어서 왜 벌써 다시 왔냐고 물었다. 자신은 원래 음식 손질 같은 걸 잘 못 해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냉장고에 넣는 것만 정리 도와드리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할머니가 착하고 안쓰럽고 불쌍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음식 손질도 안 도와드리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할머니 도와드리고 와서 통화해도 된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좀 싸했다. 내가 안 괜찮았다. 그래서 가족 기초 상식을 물어봤다.


-너, 너네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은 알아?


그가 대답했다.

-아니, 몰라.


-한번 여쭤봐.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이랑 음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너희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빵 어떤 건지 물어보았느냐고. 그가 안 물어봤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물어보기 민망하다고 해야 하나. 뭐 중요한가. 나중에 네가 우리 할머니한테 물어봐주면 되지. 그럼 네가 우리 할머니한테 점수 딸 수 있잖아. 언제가 됐든 나중에 결혼하면.


내가 그의 할머니에게 왜 점수를 따야 하는 것일까. 나중에 그 점수를 적립한 걸로 상품 주듯 엄청난 선물이 나를 기다리는 것도 아닐 텐데. 그리고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는 얘기도 줄기차게 해왔는데.


그랬다. 깨달음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평온하고 슬픈 깨달음의 시간.


입버릇처럼 나는 결혼하기 싫어한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누굴 만나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너에게 결혼이 중요하다면 나를 거를 선택권이 있다고. 거르려면 거를 수 있도록 미리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만 통화해도 된다고, 집에 있을 때 할머니 좀 도와드리는 게 어떠냐고 할 때마다 그는 말했다.


-나중에.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중에. 나중은 죽기 전에 언젠가.


그가 말을 아무리 예쁘게 한다 해도, 훗날 모든 집안일을 내가 해야 한다면 전혀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추리해봤을 때 결혼한다면, 혹은 함께한다면 그는 훗날 분명 자기 여자에게 모든 효치다꺼리(효+뒤치다꺼리)를 시킬 수밖에 남자였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틈틈이 집안일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는 해 보지는 않았지만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결혼은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잘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지켜봤을 때, 그는 집안일을 잘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의 할머니 자리는 내 자리가 될 공산이 커 보였다.


그는 내가 이런 것까지 체크하고 있는 줄 몰랐겠지만 가끔 이런 질문도 했다.


-너,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니가 먹은 밥그릇 설거지는 니가 하지?

-그냥 귀찮아서 누가 없으면 아예 잘 안 챙겨 먹는 편인데. 할머니 오시면 그때 같이 먹지.


그는 자신의 할머니처럼 착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착한 할머니가 널 한 사람 몫의 인간으로 키우신 게 아니라서 그냥 너는 몸만 컸구나.


너의 할머니와 똑같은 상황이었던 어떤 할머니는 쌍욕을 해가면서 인간 하나 만드셨던데. 여자가 착해서 남자의 잡다한 일을 티 내지 않고 다 해주면,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만든다.


그는 가끔 나에게 널 똑 부러지게 잘 키우신 우리 부모님한테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를 이렇게밖에 못 키운 그의 착한 할머니에게 전혀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런 그를 데리고 살 생각을 하면 앞이 깜깜했다.


예쁜 말이 집안일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 중에는 자기가 나라를 구한 것 같다는 말도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안 구했는지 알 수도 없지만 구했다 쳐도 집안일 안 하는 남자와 계속 만날 수는 없었다. 내 평생이 걸린 문제니까.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겹쳐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가 말했다.


-내가 너 같은 앨 이제 어디 가서 만나. 내가 널 만나면서 친구들한테 뭐라고 자랑했는지 알아?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고, 나 같이 별 볼 일 없는 애가 너 같은 애 만난 거 보니 인생 헛산 건 아닌 것 같다고 그랬어, 제발.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해도, 이번 생에 태어났으면 남녀 구분 없이 세탁기는 돌리고, 빨래 널고 개고, 집에 사람이 없으면 자기 밥은 자기가 차려먹고 설거지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도 잴 건 재야지.


-그럼 나는?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너를 어떻게 계속 만나.


몇 마디 더 하긴 했는데 기억은 안 나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재수 없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부드럽게 포장은 했지만 결국 내가 아깝다, 는 그런 맥락의 내용.


말은 예쁘게 하지만 사람 없을 때는 아무것도 안 먹고, 차려줄 사람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말을 아프도록 정확하게 하고 집안일을 할 줄 알았던 그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쌍욕을 하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이 새끼, 저 새끼, 이 호로쌍놈의 새끼 하며 그를 움직이게 하고 결국 웬만한 집안일을 다 할 수 있게 만든 그의 할머니가 그래도 그를 한 사람 몫을 하는 인간으로 키우셨구나 싶었다.


착하게 키워 손자를 말을 예쁘게 하는 남자로 키운 할머니보다, 온갖 욕을 해서라도 사람 구실 다 하게 만든 할머니가 훨씬 멋있다. 욕하는 할머니가 괜찮은 남자를 만들어서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었다. 비록 그 남자가 내 남자는 아니었지만.


예전에 미드에서 누군가가 한 여성 캐릭터에게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냐는 말에 그녀가 우아하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한다.


-저도 우아하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면 우악스럽게라도 살아야죠.


우악스럽게 살아야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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