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음은 ‘왜 생기고’ 지랄인가
나는 연애의 참견을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새로운 심리학 용어들도 많이 나와서 글 쓸 때도 나름 유용하다.
연애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 중 내가 선택한 ‘내 사람’에 관한 이야기. ‘내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그건 몇 번 만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여자가 한 번은 만나게 되는 남자가 있다. 정말 운이 좋거나, 정말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여자가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평범해 보이지만 ‘고쳐 쓸 수 없는 남자.’
운 좋으면 몇 번 만나고 그런 남자임을 알아채는 수도 있지만, 보통은 만날 만큼 만나고 ‘그래, 이 정도 만났으면 됐어, 이제 결혼해야지.’ 하는 순간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이 에피소드는 3년 만난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던 중 남자 친구의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한 여자가 결혼 준비를 중단시키고 잠깐 시간을 갖자고 말한 이후, 시간이 흘러 서로 노력하기로 하고 다시 결혼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바람의 현장을 들키고도 자신은 노력을 했다고 말한다. 수 틀리면 마음대로 하는 건 너 아니냐고. 결혼 중단시킨 것도 너 아니었냐고. 지금도 헤어지려고 하는 건 너 아니냐고.
문제는 만날 만큼 만났기 때문에,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내가 노력하면 바뀔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아니, 바뀌어야만 내 시간과 내가 들인 노력이 아깝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틀린 말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부분도 있다. 니가 문제야, 니가 그렇게만 안 했어도, 니가 조금만 더 나에게 ...했으면 내가 이러지 않았을 거야.
이게 바로 가스 라이팅이다. 이 기적적이면서도 무적의 논리 앞에서 싸우려고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남자를 만나는 여자들이 한 번씩은 했던 생각.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이라면 이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이 욕구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방향을 가진 욕구다. 그리고 나를 갉아먹는 정도의 노력에도, 내가 아무리 배려해도 상대방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희생적이긴 해도 결국 이 노력의 뿌리는 ‘우월감’이다. 부드러운, 우월감.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말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너보다 나아. 나는 문제가 없지만 너는 문제가 있거든. 그래도 널 내버려 두지 않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게. 그러니 나한테 고마워해.’
하는 마음.
그래야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되는 개념의 판타지가 있다. ‘마리아 판타지’
순결하고 때 묻지 않은 젊거나 어린 여성이 험하고 괴물 같은 세상 때문에 상처 입은 남자를 몸과 마음을 다해 치유해 준다는 환상. 김기덕 영화에 매번 등장하는 개념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여자는 마리아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데 거기 나온 남자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원하는 여자’를 자신의 ‘마리아’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여자의 태도는, 포기다. 그의 영화는 주변 상황으로 하여금 여자가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고, 치유를 위한 도구라고 여기게끔 심리적, 물리적으로 압박한 후 궁지에 몰려 스스로 포기하게 한 다음, 그녀를 지옥으로 끌어내린 남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되는 삶이, 마치 특별하고 숭고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우리한테 집어던진다.
메시아 신드롬이건, 마리아 판타지이건 다 이유가 있다.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는 마음, 나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나만의 역할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에겐 주어진 역할이 없다.
주어진 역할이 없으니, 놓인 환경이 이상하면 발을 빼면 된다. 아니, 빼야 된다. 옳고 그른 것의 문제가 아니다. 망가진 관계 속에 있으면, 내가 아무리 망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망가진다. 우월감, 숭고함은 개나 주고 도망쳐야 한다.
우리에겐 역할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딱 하나뿐인 인생이 주어졌을 뿐이다.
그래도 될까, 라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주인공이 아니다. 그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어떤 구렁텅이 같은 상황을 빠져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주연 배우 도망간다, 잡아라!’ 하고 쫓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