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는 걸요

그래도 어쩌다 실수로 흥하는 것들도 있었으면

by 시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p.262

몇 해 전 겨울, 나는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다. 밀린 일을 수습하느라 어지러울 정도로 일상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던 내 귀를 찌르는 격려가 있었으니 그것은 나처럼 자주 일을 벌이고 땅굴을 파던 친구 가피의 말이었다.


“언니 괜찮아요. 우리는 어차피 다 망하는 걸요.”


그녀는 집필을 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삶이 살아지지 않는다고, 누가 글 쓰는 삶에 대해 물으면 이걸로 밥벌이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글 쓰는 노동’, 그 불확실한 경제활동에 불안해하면서도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들을 멈추지는 않는다. 쓰는 삶에서, 안 쓰는 삶으로 바꿀 수 없다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결연히, 혹은 아무렇게든,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이 책이 올해 초에 나왔을 때, 홍대 근처에서 오프라인 북토 크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일정을 한번 미뤘다가 결국 취소가 되었다.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 하는 글을 쓰는 작가였는데 아쉽다.





이 책이 나올 무렵의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언니, 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거 포기했어요.’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중이었다. 포기한다 그래 놓고 또 도전할까 봐, 남몰래 또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면 시놉시스 짜고, 시나리오 쓰면서 붙들고 끙끙거릴까 봐, 밤새 퇴고하고 그럴까 봐, 출퇴근하며 시나리오 들여다보고 또 보고 그럴까 봐, 여기저기, 사람 만날 때마다, 묻지 않아도 말하고 다녔다. 거의 1년 가까이 그러고 나니 ‘진짜 안 쓰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하는 생각이 마음속을 채웠다. 말하고 보니 웃기지만 사실 내가 작가를 포기할 줄 몰랐다. 말만 그래 놓고 사실은 더 열심히, 더 잘 쓰고 싶을 줄 알았다.


결국 나조차도 겪어보기 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걸 나만 이렇게 늦게 깨달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엇, 너 지금 포기하려는 거? 그러지 마.’ 하는 느낌의 제목이었다. 이미 포기했지만.


하루 종일 읽었던 것 같다. 먹고 자고, 눈 뜨면 다시 집어 들고 읽었다. 그렇게 새벽 3시 반이 넘도록 읽었다.


읽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을 주는 책은 흔하지 않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은 이야기였다. 그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느냐 유무와 상관없이 힘이 있다. 독자는 만족할 만큼 잘 썼는데도 불구하고 작가의 소득이나 수입으로만 보면 망한 것에 가까운 상태였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인생을 갈아 넣었지만 실패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뭐 어떠냐는 것. 그녀가 말하는 건 그런 거였다.


작가는 망할 것 같을 때마다, 혹은 망한 것 같을 때마다 친구의 격려를 생각한다.


p. 263

그 뒤로 과부하에 걸려 곤두박질칠 때마다 주문처럼 가피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지치지 말고 힘내지 말아요.”


그녀의 글과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세상의 스포트라이트 제대로 한번 받을 자격이 있다. 최소한 한 사람의 독자를 온통 빠져들게 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망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은 시대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녀가 어쩌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오지게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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