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은 당연하고 셰익스피어는 이상해?
지금도 전지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형이겠지만, 10년 전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형의 여자였다.
10년쯤 전, 내가 알던 어떤 남자도 자신의 이상형이 전지현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그 당시 한창 셰익스피어에 빠져있을 때였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내 남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셰익스피어가 내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그 남자애는 웃음을 터뜨렸다.
-셰익스피어? 그 작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듣고 굳이 작가, 냐고 되묻는 것부터 어이없었다. 셰익스피어라는 명사에 다른 직업군을 가진 유명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글 쓰는 여자가 셰익스피어가 이상형이라는 게 도대체 어느 부분이 웃음 포인트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묻는 것이라면 모를까.
나는 웃음기 하나 없는 말투로 물었다. 왜 웃냐. 녀석이 웃다 말고 설명했다. 너 진짜 골 때린다,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이상형이 될 수가 있어? 심지어 그 사람, 죽은 사람이잖아.
이상형에 생사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은 사람이라서 이상형에서 배제해야 한다니. 나도 전지현을 좋아하지만 그게 셰익스피어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 이상형이 셰익스피어라는 사실에 진지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이상형이 전지현이라는 사실에 나만큼 진지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예뻐서, 미디어에서 보이는 성격이 매력 있어서 이상형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매력의 요소가 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 사람의 본질까지는 아니다. 어쩌면 그의 이상형은 지금쯤 수지나 다른 여자 연예인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이상형에 진지하다면 남의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니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네가 가진 생각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인 줄 아냐고 비웃고, 그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구절절 설명한 후, 또한 외모를 떠나 심지어 생사 여부까지 떠나 셰익스피어가 전지현보다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 있는 인물인지 설명해주고는 그와 연락을 끊었다.
그 녀석이 웃었던 건 단지 셰익스피어가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초상화가 매력적인 외모는 아닌 것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뭐가 됐건 누군가의 이상형을 어떻게 함부로 비웃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글 쓰는 사람이 이상형인 걸, 그게 심지어 셰익스피어인데 비웃음 당한 일은 한동안 계속 언짢았다. 그 남자가 무례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셰익스피어가 누군가의 이상형으로서 무시받을 사람이 절대 아닌 걸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그 외에 하고 싶은 말 다 해주고 연락을 끊었는데도 한동안 생각하면 짜증이 났다.
글 쓰는 남자 중에 다른 남자로 할 걸 그랬나. 윤동주나 백석으로. 잘생긴 데다 글 쓰는 사람이었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까지 한 그들이었다면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함부로 비웃지는 못했을 텐데.
글 쓰는 남자가, 그것도 대중적으로도 사랑받고 문단의 평가 역시 생전, 사후 모두 최고인 평가를 받은 사람인데 이렇게 비웃음 당할 일이라면 글 쓰는 여자도 누군가의 이상형으로 언급되었을 때 비웃음거리가 될 확률이 높을까. 글 쓰는 여자 중에 괜찮고 매력 있는 사람 정말 많은데.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