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같지만 사실은 비현실적인 ‘애티튜드 판타지’
결말이 만족스러운 드라마는 마지막 회를 한번 더 보게 된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마지막 회에서 은주가 전남편 태형을 만나러 간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태형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 있다.
태형 : 만나는 사람 있어?
은주 : 친구로 지내는 사람이 있어. 쓸데없는 질문을 안 해서 편해.
태형 : 나처럼 말이 없나 보네.
은주 : 아니. 쓸데없는 질문은 안 하는데 다른 말이 너무 많아.
태형 : 친구끼리 닮았네. 당신도 은근 말 많아.
은주: (어이없다는 듯) 나? 나는 아니야. 당신 정말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잘못 알고 있네.
태형 : 처제 야단칠 때, 그리고 누구 지적할 때. 당신 엄청 말 많아. 말도 빠르고.
은주 : 꼭 필요할 때만 하는 거야. 사람의 단점, 허점이 막 보이는데 이것만 고치면 딱 좋을 거 같은데, 남들은 어떻게 참아버리는지 모르겠어. 나는 일부러 시간 내서 찬찬히 말해주는 거야. 그거 쉬운 거 아니야.
은주는 자신이 ‘말이 많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말을 많이 했다는 걸 깨닫고 피식 웃는다. 그런 은주를 보며 태형도 편하게 웃는다.
드라마는 아무리 현실적으로 보인다 해도, 사실은 잘 짜인 판타지다.
이 드라마가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로 끝나거나 ‘모두가 행복한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이 드라마 역시 사실은 판타지 드라마다.
‘판타지’라고 하면 뭔가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나오거나 환상적인 설정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판타지도 여러 갈래다.
완벽한 남자를 만남으로서 막이 내리는 ‘신데렐라 판타지’
완벽한 복수를 완성함으로써 끝이 나는 ‘복수 완성 판타지’
공적 영역의 누군가(형사, 검사, 경찰 등)가 소시민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우리가 만족할 만한 결말을 보여주는
‘정의구현 판타지’ 등등.
‘완벽한 남자’ ‘완벽한 복수’ ‘만족할 수준의 정의구현’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이것들이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항상 이런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상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드라마는 내 시각으로 보자면, ‘애티튜트 판타지’ 였다.
이 드라마 속, 이걸 어떻게 풀어가려나, 얜 또 왜 이런 사고를 치나 싶은 상황 속에서 그걸 대처하는 가족의 태도는일상 속 우리들이 접하기 힘들거나, 어쩌면 만날 수 없는 태도였다.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가시 돋친 말을 하는 인물도 있고, 많은 설명 없이 부부관계를 정리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격지심에 분노를 못 이겨 물건을 던지는 인물도 있고, 가족이 힘들다며 아무런 설명 없이 이민을 떠나는 인물도 있고, 숨기면 안 되는 비밀을 숨기고 결혼하는 인물도 있었다.
표면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가족인데 문제가 없는 인물이 없었다. 사실 평범해 보이지만 일상을 사는 우리 역시 드라마 정도 수준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가족으로 인한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각자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와 우리의 일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은, 어떤 실수가 됐든,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든, 그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벌어진 문제 해결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문제를 일으킨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선을 넘지 않았고, 선을 넘더라도 훗날이라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도덕책 같지 않은 방식으로.
그 지점이 좋았다. 가족인데도 노력한다는 것.
현실에선 ‘가족이라서’ 노력하지 않고, ‘가족인데’ 그것도 이해 못해주냐는 말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말이다.
이런 태도에 관한 판타지 드라마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른 판타지만큼이나 애티튜드 판타지도 어차피 현실에는 거의 없다.
너무 없어서, 가끔 현기증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