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사람도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모른다

그 삶을 가져보기 전까진

by 시은

요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유튜브를 계속 보고 있다.


오래된 <해피투게더> 방송을 보는데 비, 이효리가 함께 나온 편집본에서 이효리의 이상형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어떤 걸 보느냐는 질문에 효리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돈이라고는 그녀의 반의 반도 없을 그녀의 껌딱지인 이상순과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 이상순을 만났던 때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상순이 소개받는 자리에 새로 산 차를 가지고 나왔는데, 아직 새 차라서 아끼느라 비닐도 안 뜯은 차를 끌고 나왔다고. 그 모습이 썩 좋지 않아서 그 후 별 연락은 없었다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재력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냥’ 다시 한번 이상순을 만나봤을 것이다.

‘그냥 만나나 보는 거지, 뭐.’ 하는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사람과 있으면 내가 편안해하는구나, 별 일 없어도 행복해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그녀는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이 잡아야 하는 게 지금 이 행복이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실천에 옮겼다.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잘 안다고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변의 시선, 그거 신경 안 쓰는 거 보통 일이 아니다. 오래 가지도 않고 돈 한 푼 던져주지 않을 주변 시선 그거 때문에 우리가 ‘적당히 살고,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느라 적당히 별로 행복하지 않은 채’ 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할지 모른다. 이상순이 그녀보다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인 것, 그다지 돈 많이 못 버는 것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행복한 부부이자 안정적인 두 사람, 이효리와 이상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하다고 해서 자신 마음이 원하는 걸 처음부터 제대로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의 기준인 재력가가 아니라서 이상순을 그냥 ‘걸렀다면’ 그녀는 자신이 어떨 때 진짜 행복한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30대 절반까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글로 먹고사는 ‘작가의 삶’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립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나를 비롯해서, 글을 쓰는 여자가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여자가 진화하게 되면 작가가 되는 것이지만, 이 수많은 글 쓰는 여자 중 내가 작가로 진화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요즘 내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상황이 좋아지면 좋겠지만 이대로도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언젠가 지금을 떠올리면 이 순간에 대해 작게 미소가 지어질 것이 느껴진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독립적인 상태로 글을 쓰는 지금이 행복해서 놓을 생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무엇보다 ‘독립적인 삶’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만약 작가가 될 수 있는데 예전처럼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작가의 선택지를 포기할 것이다.


‘독립적인 삶’은 내가 갖고 싶었던 전부였다. 그 이상은 가지면 좋지만, 못 가져도 어쩔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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